[인터뷰] 핀란드를 만나기 전, 우리가 꼭 나누어야 할 이야기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김윤미 대표의 20년 스토리
2018-11-25 13:47:06 , 수정 : 2018-11-25 16:16:06 | 김세희 에디터

[티티엘뉴스▶ 트래블인사이트] 언제부터였을까. 우린 핀란드 디자인에 눈을 떠, 여행을 떠나고, 청정한 식재료까지 탐하고 있다. 출구 없는 핀란드 매력을 찾아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Business FINLAND), 김윤미 대표의 20년 스토리를 담았다.

 

 ▲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김윤미 대표(Trade Commissioner of Business FINLAND), @tonttu_and_lintu

 

Q. 요즘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참 드물어요. 시간을 내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흔쾌히 현관문을 열어주시다니. 대표님의 프라이빗한 공간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인터뷰를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핀란드를 눈에 담고, 맛을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언어로만 핀란드를 이야기하는 건, 많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거든요. ‘핀 스프링’이라고 하는 핀란드 탄산수에 수제 장미꽃잎 잼(Rose Petal Confiture)를 넣으면, 핀란드 봄날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자연에서 온 장미 꽃잎 백 장을 으깨서 만든 잼(FP Kotaja 제조)과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핀란드 물의 상쾌함으로, 잠시 힐링해보는 거죠. 세계 진 토닉 대회(국제 주류품평회, IWSC, 2015-17)를 석권한 핀란드 진 토닉(Gin & Tonic)과도 궁합이 좋아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사소하지만 일상의 핀란드 감각을 한 가지라도 공유할 수 있어서 저도 참 즐거운 걸요!

 

▲ 타피오 비르깔라(Tapio Wirkkala)의 이딸라 울티마 툴레(Ultima Thule)에 담긴 수제 장미꽃잎 잼(Rose Petal Confiture, FP Kotaja 제조)과 핀 스프링 탄산수

 

Q. 어느 순간 핀란드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어요. 그리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저도 2년 전 헬싱키를 다녀온 것을 보면 신기한 일이죠.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는 그간 기술 부분에만 집중했기에 제가 대표가 된 이후 최근 3년간 디자인, 여행, 푸드와 같은 B2C에 초점을 맞췄죠. 경제적인 규모면에서는 기술 · 산업이 중요하지만, 경제 이외의 정신적 가치를 품고 있는 게 B2C인 만큼,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Business FINLAND의 역할은 다채롭습니다. 핀란드 정부의 귀속 부처로서 4가지 정도의 전문가 유닛이 모여있는 셈이죠. 관광(Tourism), 투자(Investment), 기술혁신(Innovation), 무역(Trade)을 맡은 경제고용부 산하 Business Finland가 외교, 군사, 국가 브랜딩 등을 담당하는 외무부의 대사관과 함께 Team FINLAND를 이룹니다. 부처간 벽을 허물고 서로 소통하면서 핀란드 기업들의 성공을 위해 함께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어요. B2B와 B2C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구성이지만, 하는 일의 매커니즘은 동일합니다. 핀란드에게 있어 한국은 중국, 일본에 이어 3번째로 큰 교역 대상국이기에, 한국과 핀란드 산업 사이에서 가교역할은 물론, 엑셀레이터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 아트 퍼니처 디자이너 함도하 작가의 벤치, 와 협탁, 과 함께한 김윤미 대표. 작가 작품에서 ‘유닛’은 단 한 작품씩만 제작되고 ‘에디션’은 같은 작품을 여러 개 다수 제작하는 걸 의미한다.  <Harmony>와  <Unit No.1>  모두 ‘유닛’으로 김윤미 대표만 소장하고 있는 잇 아이템.

 

Q. 양국의 경제무역 관계가 안정적인 문화교류를 이끌어낼 수 있기에, 어쩌면, 관광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진화된 조직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행이라는 것도 여러 요소들이 얽혀 있잖아요. 디자인, 음식, 교육, 문화, 스포츠 등의 라이프 스타일이 결국 여행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각 분야들은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기에 같이 협업하게 되면 관광 이상의 양국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줄 수 있고요. 제가 양국간 기업들의 협력을 위한 일이란, 한국에서는 핀란드의 어떤 점이 필요하고, 핀란드에서는 한국의 어떤 점이 요구되는지 발굴하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조언을 하면서 간극을 좁혀나갑니다. 이때 한국 기업, 핀란드 기업, 핀란드무역대표부 사이 신뢰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되죠.

 

기술 보안이 가장 중요한 영역일 경우 한국 기업은 타국으로 외주를 맡기지 않고 내부 인력을 활용합니다. 그런데 특정 기술의 국제표준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상황이 오면 해당 국가에서 신속하게 대응해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 신뢰관계가 구축이 되지 않고서는 섣불리 요청하기가 어렵죠. IT 기술은 타이밍을 놓치면 국제적인 흐름에 밀릴 수 있기 때문에 조급해지기도 하고요.

 

제가 보람을 크게 느꼈던 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한국의 어느 대기업과 핀란드 대기업간의 상호 신뢰관계를 지키며 사업협력 개발을 하고, 결국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던 기억인데요. 한국 기업의 국제 기술경쟁력과 제품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케이스입니다. 이렇게 비즈니스를 통해서 핀란드와 우호적이고 긴밀한 유대감이 형성된다면 자연스럽게 한국분들이 핀란드로 여행을 하게 되겠죠. 결국 산업과 여행이 모두 하나의 길로 연결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 핀란드 가구 브랜드 , ‘Halikko’ 라인의 체어에 앉은 김윤미 대표. 한국에서 최초로 ‘Choice' 의 다양한 제품 라인을 구입해 보유하고 있다.

 

Q. 우리가 방안에서도 핀란드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네요. 제가 핀란드를 직접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그런 맥락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러고 보니, 어느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핀란드는 각종 콘텐츠가 한국 사람들을 매혹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반드시 찍어야 할 포토 스폿들 중 하나죠. 음악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공원의 기념비 사진은 다녀온 분들이라면 하나씩 소장하고 계실 텐데요.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은 동상을 세우면 되는데, 좀 독특하죠? 대부분 악기를 형상화했을 거라는 감흥 정도를 말씀하곤 하는데요.

 

핀란드 사람이 그 작품을 볼 때는, 떠올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만든 작가 에일라 힐뚜넨(1922-2003)인데요. 24톤의 600개 강철 파이프가 동원된 기념비는 어시스턴트 1명과 여성작가 단 둘이 이룩한 결과물입니다. 용접을 하고 물을 바로 부을 때 나는 연기가 몸에 해로워 인생과 작품을 맞바꾸었다는 평을 얻었죠. 핀란드 강인한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국민훈장을 받은 조각가입니다.

 

 

▲ 시벨리우스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파이프 오르간 형태의 조형물 및 얼굴 조각상(Sibelius Monument) ⓒ Visit FINLAND


크로스오버 협력은 핀란드의 경쟁력이기도 한데요, 창의성이 중요한 오늘날에 더욱 필요합니다. 핀란드에서 패션 디자인 프로젝트를 한다고 보면, 가구처럼 연관 없을 것 같은 디자이너와 협업을 합니다. 소재가 다르고 영역이 다르지만 거기서 나오는 창의적 아이디어에 주목하죠. 그게 한국 사람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고요.


핀란드와 한국 사이에서 비즈니스를 만드는 제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현상은 ‘사회적 신뢰’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빨라졌기에 이제는 법제도롤 개정해가며 새로운 기술 혁신을 적용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혁신을 먼저 시행하면서 법을 개정하는 순서를 밟게 되어야 혁신을 먼저 선도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죠. 

 

이제는 '기술'이 혁신의 ' 인에블러(Enabler)'가 아니라 '신뢰'가 혁신의 '인에블러(Enabler)'가 되었습니다. 법 개정에 앞서 사회적인 합의를 위한 ‘트러스트 엔지니어링(Trust Engineering)’을 이끌어 낼 줄 아는 핀란드 사람의 가치관이 다양한 문화와 혁신적인 요소들을 탁월하게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한국 사람들도 핀란드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휴머니즘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끌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보이지 않는 귀한 가치를 핀란드에서 발견한 것 같습니다.

 

▲ 핀란드 글라스 아티스트 Camilla Moberg의 유리조각품, . 핀란드에서는 Moomin 캐릭터를 라이센싱하는 기업 CEO 사무실에 DoReMi 작품이 있는데, 한국에는 김윤미 대표가 유일하게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Q. 핀란드를 만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2년 전 저의 핀란드 기행은 조금 달랐을 것 같아요. 에디터로서 한 차원 성장한 핀란드 재회를 위해, 앞으로 Business FINLAND의 방향을 전해주시겠어요?

 

한국 의료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병원 시스템은 가야할 길이 좀 멀다고 생각해요. 핀란드는 병원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의사와 약사가 함께 회진을 다니면서 동등한 위치에서 오직 환자를 위한 진료를 진행합니다.

 

한국은 고급 교육을 받은 약사가 병원 약국 내에서 항생제를 하루 종일 손으로 흔들며 단순작업을 하게 되는 환경에 있지만 핀란드는 로봇이 그 일을 합니다. 매뉴얼만 익히면 되는 작업은 기계가 대신하고, 우수한 의료진은 환자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제약과 의료서비스의 향상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게 만드는 환경이 이미 마련되어 있어요. 전 국민의 의료데이터가 전자화, 중앙화 되어 있는 핀란드는 최근 데이터 중심의 제약. 의료혁신이 국가산업경쟁력 제고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내년부터 저 역시 이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핀란드와 한국의 의료산업에서 기술협력을 발굴해내려고 합니다. 부가가치가 낮은 선박으로 고전했던 한국 조선업은, 자율주행 선박 기술과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핀란드와 협력한다면 새로운 기반을 만들 수도 있겠죠. B2C가 갖고 있는 비경제적인 효과를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계속할 테지만, 한국 사람들이 피부로 느꼈듯 B2C는 Business FINLAND의 B2B와 이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다시 본업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게 좋겠죠. 끈끈한 한국과 핀란드 양국의 관계를 위해 말이죠.

 

▲ 핀란드 저학년 캠프 프로그램 모습  ⓒ Business FINLAND

 

Q. 재미난 소식이 있죠? MBC every 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선 투표 1위를 차지한 핀란드 친구들이 한국을 다시 온다고 하고, 오는 28일, KBS2 <잠시만 빌리지>라는 프로그램에선 아나운서 박지윤 모녀가 핀란드 살이를 보여줄 텐데요!

 

그러게요. 순수하고 밝은 핀란드 사람 냄새가 한국 사람들에게 친근했던 것 같습니다. Business FINLAND는 그래요. 모든 핀란드 라이프 스타일 이면에 담긴 그 사람들의 내면을, 한국 사람들과 마주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게 저희의 존재 이유이고요. B2C가 가진 본질이기도 하죠.

 

<잠시만 빌리지> 제작팀과 Business FINLAND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핀란드에서 촬영이 되었기에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 아나운서 박지윤 씨는 ‘디자인 분야’를, 딸인 다인 양은 ‘크리에이티브 에듀케이션’을 경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핀란드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런데 여행사가 중심이 되다보니 교육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죠. 2년 전쯤 저희 사무소의 교육산업담당인 최윤영 보좌관과 그 갈증을 채워보기로 했어요. ‘핀란드 교육’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라 수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아니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일이었죠. 2016년에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당시 한 달간 교사들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커스터마이즈된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 처음 국내에서 교육관광 세미나를 진행했죠. 저학년 아이들 캠프부터 시작했습니다. 중 · 고등교육, 창업까지 고려한 ‘에듀케이셔널 투어리즘’을 위해 갈 길이 멀지만, 사람을 중시하는 핀란드 교육은 분명 한국 학부모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글 = 김세희 에디터 sayzib@ttlnews.com
사진 =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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