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모노레일과 '류큐'를 데이트하다
하룻밤이면 가능한 오키나와 여행법
2019-02-06 16:57:04 , 수정 : 2019-02-06 23:10:40 | 김세희 에디터

[티티엘뉴스] 일행과 헤어지고 오키나와를 홀로 걸었다. 봄바람 같던 오키나와 공기 속에서 열차는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 일본 오키나와의 지붕이나 대문의 기둥에서 만날 수 있는 시사(シーサー). 악마나 액을 쫓는 사자.

 

 

 

 

27분간의 공중산책,

오키나와 나하시 유이레일

 

다들 물었다. “하룻밤을 어디서 보낼 거예요?” 무엇을 볼 건지 묻는 나에게,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굳이 하루를 더 있겠다고 고집한 걸로 보면, 반드시 가고픈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을 그들에게, 나의 반응은 김 빠진 콜라였다. 그저 모노레일을 탈 거라니.

 

 

▲ 쓰보가와역에서 유이레일 첫 만남

 

만화에서처럼 유이레일이 태워다주는 오키나와를 만나고 싶었다.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엔 유이레일 끝자락에서 무심하게 승차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오키나와 소바를 들이키고, 어둑해지면 숙소 근교에서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정도. 그 길을 유이레일이 열어주는 대로 실현할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설렘을 안고 마주한 승차권 판매기는 한국어가 지원되어 망설임 없이 티켓을 내어주었고, 한국어로 인쇄된 유이레일 가이드 책자는 무계획인 나에게 오늘의 메뉴처럼 다가왔다.

 

 

 

▲ 본래 오키나와 모노레일은 ‘유이레일(ゆいレール, Okinawa Urban Monorail : Yui Rail)이라고 불린다.

 

 

류큐 왕조의 흔적, 슈리성

 

 

물길 위에서, 건물 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유이레일은 벌써 종점인 슈리역에 도착했다. 주요 명소들은 한국어가 병기된 안내판 덕분에 핸드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었다. 길을 건너다 교복입은 학생들에게 곁눈질 하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독자적인 류큐 왕조 분위기를 자아내는 슈리성

 

오키나와 속 만리장성 같은 슈리성은 순식간에 류큐시절로 안내했다. 류큐왕조가 만들어지고 멸망하기까지 영광을 안던 곳. 비록 태평양 전쟁 오키나와 전투 때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1992년 복원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붉은 기운 가득한 성 내부와 화려한 문양은 중국과 류큐 문화의 융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키나와 풍장(風葬)

 

일본의 아름다운 길, 100선인 줄 모르고 걸었다. 길이 가진 본연의 풍광을, 마음이 섣부르게 그르칠 때가 있기에 가끔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슈리성 남쪽으로 이어지는 킨죠우쵸 돌다다미길은 류큐시대 귀족들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매우 고풍스럽다. 300m 남짓의 짤막한 언덕길이지만, 나하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까지 품었다.

 

▲ 슈리성에서 한가롭게 쉴 수 있는 돌다다미길의 카페

 

점심 먹을 곳을 찾던 중 독특한 입구가 눈에 띄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매표소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무심코 내뱉은 한국어를 들은 직원은 혼자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류큐왕조의 쇼신 왕이 아버지 유골을 이장하기 위해 건립된 석조 왕릉 옥릉(다마우둔)’을 소개했다. 매표소 지하에 왕릉 내부를 보여주는 전시를 보고 옥릉을 보면 이해가 쉽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풍장 문화를 담은 옥릉

 

제법 규모가 큰 옥릉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풍장세골이라고 하는 관습이었다. 사체를 매장하지 않고 옷을 입힌 채 관에 넣어 공기 중에 놓아두는 장례를 의미하는데, 훗날 유골만 잘 씻어서 항아리에 담아 안치소(장골기 : 藏骨器)에 모셔 놓는다고 한다.

 

 

툇마루에서 오키나와 소바 한 끼

 

 

▲ 슈리성 근처에 위치한 ‘류큐 사보우 사이비우나(Ryukyu Sabo Ashibiuna)’ 레스토랑

 

오키나와 소바 한 그릇이면 충분했는데, 잘 차려진 소바 정식을 먹었다. 게다가 오키나와 귤 향기가 나는 맥주 한 잔까지. 오래된 민가를 개조한 툇마루에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던 탓일까. 작은 정원을 바라보며 우동 면발 같은 오키나와 전통 소바는 텅 비었던 속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식당에 사람이 꽉 차있을 만큼 인기가 좋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운이 참 없을 때도 종종 있는데, 우연하게도 근사한 점심을 먹고 나니, 욕심을 비워야 채워진다는 어느 스님의 한 마디가 절로 무릎을 치는 순간이었다.

 

 

 

츠보야 도자기 거리에서

부쿠부쿠 차 한 잔을

 

 

이별한 이의 모든 것이 날아가고 남은 유골을 도자기로 된 납골단지에 고이 모셔두는 관습. 옥릉에서 알게 된 풍장 문화를 츠보야 도자기 거리에서 다시 재회했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도자기 츠보야 야기발생지에서는 삶과 죽음을 빚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름가마의 연기 때문에 도공들은 중부지역으로 이주했지만, 츠보야 도자기 박물관과 20여 개의 도자기 공방은 여전히 오키나와 전통을 고수하고 있었다.

 

 

류큐왕조 시절 귀족들만 마셨다던 진귀한 부쿠부쿠 차(ぶくぶく茶)는 세계 10대 신기한 차로도 알려져 있다. 거품이 일어나는 모양을 뜻하는 부쿠부쿠는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으로 향하는 오키나와 배가 출발할 때 뱃길 뒤에 거품이 일어나면 파도가 잔잔해져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던 징조에서 비롯되었다.

 

 

류큐왕조의 흥망성쇠를 따라다녔던 하루. 별다른 계획이 없다해도 유이레일이 펼쳐준 오키나와 세상은 '류큐시대'였다. 생각해보니 열차 안에서 흐르는 전통 리듬부터, 모든 건 예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영원히 사라질 뻔한 류큐의 향기를 보존하고 재건하는 오키나와 사람들. 모노레일은 오늘도 여전히 그들과 우리의 연결고리였다.

 

일본 오키나와= 김세희 에디터 sayzib@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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