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경쟁력, 전통시장이 살린다
축제 준비비용 대폭 줄일 수 있어
지자체 부서 간·상인회 협조 필요
2018-02-10 22:35:14 | 편성희 기자

올해도 1년 내내 수많은 축제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린다. 그러나 상당수의 축제지에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이 시시하다, 축제 장소를 둘러싼 장터에선 싼 듯 싸지 않은 특산물을 팔아보려는 상인들과 눈치싸움을 한다 등의 비판이 만만찮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되고 있냐는 의문,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산물이라는 지역 언론의 비판도 거세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과의 협력시도는 이런 점에서 환영받고 있다.
 

 

1월에만 88개 축제


지자체 지원부서 및 주관업체들은 방문객 모시기에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1월에만 크고 작은 축제가 88개. 축제가 워낙 많은 터라 30초 방송광고, 주요 포털 배너광고, 광고성 기사, 포스팅이라도 노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이다. 지역의 특색이 드러나는 프로그램, 미리 가본 듯 연상하게 하는 영상과 다양한 것을 체험해 본 사실적인 체험기를 주요 채널을 통해 집중 홍보하는 지역이 그나마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그런 면에서 전통시장은 축제의 지방색을 잘 살릴 수 있는 요소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전통시장을 안다는 건 그 마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 전통시장은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해 관광지로서의 매력도가 높은 데 비해 홍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청이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을 추진하고, 전통시장이 주도하는 축제도 열렸지만, 관광축제에 전통시장을 접목하는 사례는 드문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주시는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축제를 개최하며 내지인 및 외지인의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 모범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얼음부터 군밤축제까지
 

공주시는 지난해 12월23일부터 올해 2월4일까지 공주산성시장 문화공원에서 2개의 축제를 연달아 개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2018 올해의 관광도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선정지 등 문화관광도시를 표방하는 공주시가 4계절 축제 육성을 위해 선택한 장소는 전통시장이었다.
 

공주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연장, 수영장, 스케이트장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공터를 확보해 문화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주산성시장 상인회는 시장 활성화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공원에 아이스링크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축제·공연기획사인 문화놀이터공주와 함께 지난해 12월23일부터 한 달간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오시덕 공주시장은 개막식에서 “이번 축제를 통해 공주시민이 즐길 수 있는 문화장소가 생기고, 외지인들이 공주의 전통재래시장을 찾고 공주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말한 것처럼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에서는 스케이트, 썰매, 제민천 송어 잡기, 깡통열차, 허브족욕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가수, 예술인 등을 초청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오시덕 공주시장(사진 왼쪽)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의 인기 바통은 겨울공주 군밤축제가 이어갔다. 2월1일부터 4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군밤축제는 첫날에만 1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방문객들은 대전, 세종부터 서울, 경기, 경상, 전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인원이 총 인원의 60~7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주시의 대표 특산물인 공주밤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호평을 받았다. 관광객들은 밤을 구입해 직접 그릴에 구워먹었다. 컬링, 아이스하키골대, 알밤 골프 퍼팅도 즐겼다. 이전 축제에서 활용된 아이스링크에서는 이번 축제에서도 스케이트, 썰매 및 얼음조각 전시 체험 등의 장소로 사용됐다.
 

시장에서는 설 명절 차례 상에 올릴 수 있는 질 좋은 명품 밤과 공주시 브랜드인 고맛나루, 알밤한우의 농축산 설 명절 선물 세트를 할인 판매했다. 농축산물을 구매하면 체험시설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방문객들의 반향을 얻었다. SK 텔레콤 티움 모바일관, 도전 군밤 올림픽, 아이스 링크 운영 등 다양한 체험거리로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였다.


전통시장 활성화는 물론 지역의 밤 농가 참여율을 높이면서 농가 소득 보전을 통한 경제 활성화의 교두보 역할을 해냈다는 평이다.

 

지자체 적극 주도 아쉬웠다

 

하지만 축제 준비 및 진행과정에서 아쉬움도 남겼다는 전언이다. 두 차례의 축제 중 시의 지원을 받은 축제는 4일간 열린 군밤축제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 개최시기를 놓고서도 시가 당초 일정보다 늦게 허가해줘서 아이스링크 준비나 시장 상인들과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 개막일이 토요일이었고, 오 시장이 개막식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대부분의 점포가 문을 열지 않은 점도 시에 대한 상인회의 섭섭함이 드러난 현상이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을 주관한 한 관계자는 “시에서 약속했던 행정지원, 재정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자 상인들도 의욕이 저하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군밤축제의 성공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달간 지속한 얼음공주 드림 페스티벌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시가 인정해주길 바란다. 올해 다시 축제를 개최한다면, 시가 충분한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갖춰진 콘텐츠의 보고

 

전국에 골고루 있는 전통시장은 사실 ‘콘텐츠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손색없다.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의 장터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현재진행형인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린다. 최근에는 공영 주차장과 깨끗한 상가 시설까지 갖추는 등 대형마트에서 제공하는 쾌적함, 편리함도 생겼다.
 

외지인들도 타지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전통시장이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일이 가까워지며 인근 전통시장이 타지인, 외국인으로 붐비는 현상도 이를 대변한다. 강릉중앙시장 상인연합회 김영숙(60·여) 씨는 “외국인 손님들이 대하, 과메기 등을 사는 모습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해돋이, 도깨비 촬영지 등을 보러 온 타지인에게도 전통시장은 들를만한 여행지로 손꼽힌다.

 

전통시장 × 여행사

 

인근 관광코스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여행사와의 협력도 활발하다. 보통 개별·자유여행객은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한 번 정도는 그 나라의 전통시장을 찾는 것이 문화체험의 필수 코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 관광객은 여행사의 스케줄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전통시장 방문은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단체 관광객 비중이 높은 DMZ의 특수성으로 인해 단체관광객 비중이 높은 문산에서는 전통시장과 여행사의 협력이 절실했다는 평가이다.
 


▲문산자유시장(시장상인회 제공)

 

경기도 파주시 문산자유시장에서는 1만원 이상 물건을 사거나 식사한 영수증이 있으면 인근 DMZ관광을 무료로 할 수 있다.
 

문산자유시장은 휴전선에서 불과 10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를 착안해 시장상인회는 ‘DMZ투어’와 시장 방문을 연계한 상품을 2015년부터 출시해 알리기 시작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두 차례씩 DMZ로 가는 전세버스가 시장 앞에 대기하고 있다. 이 버스를 타면 3시간 여 동안 임진각~통일대교~제3땅굴~도라전망대~통일촌을 둘러볼 수 있다. 시장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먼 곳에서 온 관광객들도 몰고온 차량을 주차한 뒤, 장을 보고 관광도 할 수 있다. 문산자유시장을 통해 DMZ투어를 한 사람은 지난해 기준 2만3000여 명이나 된다. 시장 매출도 50% 이상 늘었다.

 

전통시장 × 지역 설화

 

지역에 오랫동안 전해지는 구전설화를 콘텐츠로 개발한 전통시장도 있다. 충주옹달샘시장은 지현동 옹달샘 설화의 발원지로 소문이 난 케이스다. 옹달샘에서 기도하다가 예쁜 아이를 얻었다는 내용의 설화 속 옹달샘이 시장에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3곳의 옹달샘이 있는 남부시장은 이 이야기를 콘텐츠로 개발해 옹달샘시장으로 명칭을 바꾸고 관광지로 거듭났다.



▲옹달샘시장상인회 제공


올해 옹달샘시장은 시장 주변에 조성된 사과나무이야기길과 연계한 ‘지현동 사과나무 이야기길 축제’를 4회째 진행할 예정이다.

 

전통시장 X 영화관

 

최근 경북 영천공설시장엔 한 손엔 <신과 함께> 포스터, 다른 손엔 장바구니를 든 사람이 많이 보인다. 영천공설시장 내에 영화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영천시 제공


영천공설시장은 날짜 끝자리가 2·7일인 날마다 장이 서는 60년 전통의 5일장이다. 이곳에 지난해 10월12일 별빛영화관이 생겼다. 별빛영화관은 3개월이 지난 1월까지 1만 관객을 넘어섰다. 장바구니 보관함도 있고, 무엇보다 최신 개봉작을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절반 가격에 볼 수 있다. 일반영화는 5000원, 3D 입체 영화는 8000원이다. 현재 <신과 함께>, <1987> 등 최신 작품을 하루 6개 상영하고 있다.

 

전통시장 × 지역 문화

 

경기도 부천시의 부천역곡상상시장은 만화로 유명한 부천시의 특징을 살렸다. 시장 안에 만화북카페, 만화 체험실 등을 만들어 10~20대 단골 고객을 늘렸다.
 

경기도 오산시의 오색시장은 젊은 층이 선호하는 수제맥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시장 한쪽에 맥주 공방을 만들어 페일 맥주 ‘오로라’와 흑맥주 ‘까마귀’를 개발하고, 수제맥주 제조 강의도 열었다. 20~30대 직장인이 많은 오산시민의 특징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오색시장은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전통시장에서 맥주 한잔 하고 장 보고 집에 가는 문화를 만들었다. 시장 이용객은 두 배로 늘고 점포 매출도 약 30%가량 올랐다.

 

지자체 주도의 협조 절실

 

전문가들은 “축제장소로 전통시장이 활용되면 전통시장의 약점을 대폭 보완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면 타지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시장에 흥미를 보이는 외국인의 방문빈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시장 걷기 한국여행> 가이드북을 낸 해외여행 가이드북 전문 회사인 니이미공방의 대표 니이미 씨는 청결한 시설과 대중교통 정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가이드북은 한국 내 18개 시장과 주변 관광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니이미 씨는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전통시장 활성화 세미나에서 “광주 송정역 시장은 KTX역이 바로 옆에 있고 전통적인 시장과 세련되고 현대적인 역의 모습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축제 장소에 전통시장을 넣으면, 축제 인프라 구축비용을 절감할뿐더러 전통시장 접근성의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귀감 사는 신라면세점 행보

 

최근에는 신라면세점이 전통시장과 면세점의 상생을 주도하며 귀감을 사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2월2일 지역사회 봉사와 재능 기부에 뜻이 있는 재한 중국인 유학생 50명으로 구성한 봉사단 ‘방방곡곡 알림단’을 발족해 6개월간 국내 전통시장을 외국에 알릴 계획이다.
 

신라면세점은 신라인터넷면세점 중국몰, 신라면세점 공식 웨이보 등 다양한 플랫폼과 중국인 유학생 봉사단원들의 소셜네트워크 채널로 전통시장을 소개한다. 또 인근 관광지 정보도 수집해 관광안내 자료를 만들어 제공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신라면세점이 갖고 있는 환대서비스 컨설팅도 진행한다.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했을 때 전통시장 상인들이 가장 크게 느꼈던 애로사항을 사전에 조사하고 상인들에게 컨설팅을 진행한다. 신라면세점의 중국인 고객 응대 노하우도 전수할 예정이다.
 

신라면세점 측은 “면세점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국내 전통시장과 숨은 관광지를 알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뿐만 아니라 한국 곳곳을 방문하는 낙수효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적극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편성희 기자 psh4608@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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