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후배를 위한 여행업은 없다
2023-01-25 21:37:08 , 수정 : 2023-01-27 17:58:10 | 양재필 기자

[티티엘뉴스] “너무 아쉽고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모방송사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야구선수가 했던 말이 인상 깊다. 참으로 숭고하고 멋진 말이다. 다만 여행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덕 같다. 
 

지난 수십 년간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주역들이 여행업의 초석을 쌓고 발전을 이끌어 왔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밀레니얼 세대들이 여행업계 요직을 점하고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현상에 대해 여행업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싶다) 선배들(?)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 무성하다. 

 


3년이라는 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여행업계는 역대 경험한 적 없는 혹한기를 보냈다. 이 고난의 기간 동안 여행업계 키맨들은 소리소문없이 증발하며 베이비붐 세대 중심의 여행업계 네트워크는 서서히 균열이 가는 분위기다. 더욱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IT유통플랫폼들이 본격적으로 위상을 강화하며 패키지 중심의 여행업 구조는 점차 유통의 한 섹터 정도로 분류되는 등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행상품이 유통플랫폼을 통한 하나의 단순 소비재 상품으로 팔리고, 해외 대형 온라인여행사(OTA)들이 발 빠른 시스템 확장을 하며 SNS와 가격플랫폼을 통해 직접판매(직판)까지 나서며 기존 전통 여행사들의 입지는 날로 위축되고 있다. 업계로부터 주로 나오던 매출 성과도 이제 수 많은 플랫폼과 채널로 분산돼 데이터 집계조차 힘든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 카르텔로 여겨지던 여행업계 내부에서도 세대교체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다. 여행산업에 대한 반강제적인 시대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업계 내 세대 갈등은 여행사, 관광청, 항공사, 언론사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술자리에서 국적항공사 임원은 “더 이상 과거의 줄서기(라인) 문화, 회식, 꼰대 문화가 먹히지 않는다”며 후배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행업계의 관행처럼 굳어진 눈치보기, 줄서기보다 자기효능감, 업무효율성과 실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업계에 발을 걸친 채로 금융·IT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여행업계 선후배 관계가 얼마나 권위적이고 효용성이 떨어지는지 체감하고 있다. 금융·IT업계에서 합리적으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효율성 높고 지속 가능한 선후배 관계를 보며 부러움이 컸다. 이들 업계에서 단순히 네트워크(관계)에 기대어 하향식 '내림굿'을 받으며 버틸수 있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선배가 밀어주며 후배가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도록 돕고, 후배가 성공해 선배를 대우해주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물론 여행업계에서는 기대하기조차 힘든 풍경이다.

 

이직하면 비난하고 깔아뭉개며,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후배들 경계에 열을 올리는 선배를 존경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행업계를 떠나는 후배들이 다시는 업계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며 치를 떠는 광경이 비일비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코로나 이후 여행업계는 지금 제대로 된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워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여행관광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 대화해보니 사업 확장을 위해 여행업계 선배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업계 선배들의 텃세와 유연하지 않은 협상에 실망했다고 푸념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줄서기를 하느니 여행업계에 담을 쌓고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며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해 나가며 분투 중이다. 이제 그런 신생 여행기업들은 대형여행사 회장의 이름따위는 전혀 몰라도 사업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들을 여행업계 사람이 아니라 IT기업이라 불러달라고 말한다. 해묵은 선배들의 텃새와 괄시가 오히려 이런 신생 기업들의 자체 경쟁력을 키워주고 있는 꼴이다. 결핍이 혁신을 만든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현상이다.


여행업계에는 매년 여행업에 청운을 담고 입성하는 후배들만 수천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체 산업계를 통틀어 가장 낮은 연봉 수준과 경직된 업계 문화에 실망해 절반 이상이 수년 내에 업계를 떠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소위 ‘존경받아 마땅할’ 선배를 찾기 힘든 좁고 메마른 토양에서, 바통을 받아 업계를 키워나갈 후배들이 점차 사라지며, ‘여행업계’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질까 우려스럽다.
 

 

양재필 매경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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