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별식] 충무로 터줏대감 진고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음식
2018-08-21 22:19:35 , 수정 : 2018-08-21 22:25:24 | 강지운 기자

[티티엘뉴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은 궁궐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보다 앞서 김부식이 백제 궁궐에 대해 남긴 말이기도 하다. 충무로에 위치한 진고개에 어울리는 말이다.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는 외부 모습에서도 기풍이 느껴진다. 큼직하게 써진 간판 글자에도 힘이 느껴진다. 진고개 1963년부터 지금까지 충무로에서 영업 중이다. 음식은 정갈하지만, 깊이가 있다. 

 

▲진고개 한식당 앞 간판

 

▲진고개 한식당 입구 모습

 

퇴근 이후 충무로 일대를 걷다 눈에 ‘진고개’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건물부터 묘한 매력이 있다. 강렬한 붉은 글씨로 불고기와 냉면이라는 글자가 진고개라는 상호보다 먼저 보였다. 오래된 느낌을 주는 직사각형의 타일 위로 붉은색과 푸른색 조명이 홍콩의 어느 골목을 떠올리게 했다. 

 

▲식탁 위 놓여진 식당 이름이 적힌 종이

 

의자와 식탁부터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관리가 잘된 느낌을 준다. 오랜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가 느껴지는 식탁과 의자이다. 식탁 위에는 코팅된 식당 이름이 적힌 종이가 놓여있다. 1963이라는 숫자가 이 식당의 역사를 알려줬다.

 

▲진고개 식당 기본 반찬, 제철에 맞춰 반찬이 변경된다

 

주문하자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금세 음식이 식탁 위에 준비되었다. 반찬을 가져다주시는 분과 요리를 가져다주시는 분이 다른 종업원이었다. 종업원들은 음식에 대한 질문에도 밝게 대답했다. 

 

▲깻잎과 상추 그리고 호박잎

 

쌈과 함께 호박잎이 나왔다. 호박잎은 지금 제철이라 나왔다고 한다. 진고개는 제철에 맞게 반찬을 조금씩 바꾼다. 한식의 매력은 자연을 담아내는 음식에 있다. 잘 삶아진 호박잎은 부드러웠다. 

 

반찬은 단맛이 감도는 정도로 계속 손이 갔다. 북어포를 찢어 무친 북어포무침은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다. 보리차를 내어주는데, 이제는 정수기 물로 대체된 보리차가 반갑다. 보리차는 식사 중 음식의 맛을 깔끔하게 잡아줬다. 정수기에서 나온 물로는 잡을 수 없는 감성은 덤이다.

 

▲진고개 불고기와 공깃밥

 

밥공기는 꽤 깊이가 있었다. 밥 한 공기이지만 양은 상당했다. 여러 반찬과 함께 밥을 먹고, 쌈을 싸서 여러 번 먹어도 밥이 남았다. 종업원이 불고기 국물에 밥을 비벼서 먹어보라고 추천했다. 밥공기에 남은 불고기와 국물을 넣어 비볐다. 불고기의 단맛이 밥과 어울려 입안에 감도는 식감이 좋다.

 

▲진고개 한식당 벽면에 적힌 음식이름

 

진고개는 50년 넘게 영업 중이다. 진고개에서 주는 보리차는 상징이다. 편리한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고 물을 끓이고 보리를 우리는 시간과 다시 차갑게 식히는 번거로운 과정. 그 과정을 거친 보리차가 주는 감성이 음식, 식탁, 의자에 모두 온전히 남아있는 한식당이다.

 

강지운 기자 jwbear@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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