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 알수록 보이는 발트 또는 발틱(Baltic) 여행
2016-11-20 14:59:32 | 편성희 기자

01. 발틱과 한국사

‘발틱’이란 단어에 친숙한 것은 1904~1905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던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에서 일본연합함대에 전멸했다. 이 해전에서 러시아는 일본에 패하고, 1917년에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제정러시아 시대는 막을 내렸다.

 

02. 발트3국의 관계



강한 외세에 시달렸다는 점이 세 나라의 공통점이었던 반면, 국가 간의 정복전쟁은 거의 없었다. 인종·종교 갈등 역시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각 국의 유산을 보존하려는 성향이 1989년 8월 23일 ‘발트의 길’을 만들 수 있었던 힘이다.

 

03. 발트의 길



발트 3국 여행에서 ‘발트의 길’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부터 20년 동안 독립의 기쁨을 누렸지만, 1939년 8월 23일, 2차 세계대전 중 소련과 독일의 ‘몰도로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의해 소련으로 편입됐다. 세 나라는 1989년 발트총회를 결성하고 소련의 점령이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며 독립운동을 했다. 전 세계에 그들의 주장을 확실하게 알리는 방법으로 대규모의 ‘인간띠’를 생각해냈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부터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지나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까지 600km를 손에 손을 잡고 독립을 외쳤다. 당시 세 나라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200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고 한다. 7시부터 15분간 세 나라의 모든 교회의 종이 울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국가(國歌)와 노래를 부르면서 세 나라의 삼색기를 흔들었다고 한다. 헬기가 선회하며 역사적인 장면을 전 세계에 중계했고, 결국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발트 3국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2006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04. 길드(Guild)



발트 3국은 현재도 길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특히 호박(Amber), 린넨 등을 이용한 수공예품 제작과 유통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05. 비자

발트 3국 모두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90일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

 

06. 인터넷 인프라

발트 3국의 인터넷 인프라는 상당히 좋다. 스카이프(Skype)를 처음 발명한 곳도 에스토니아다. 라트비아는 한국, 노르웨이, 스웨덴, 홍콩, 스위스에 이어 세계 6위의 인터넷 접속 속도를 자랑한다. 공항, 터미널, 레스토랑, 카페, 호텔 등에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편성희 기자 psh4608@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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