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이 살다간 연해주 한인들의 한서린 땅 ‘러시아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
2020-02-04 10:08:36 , 수정 : 2020-02-04 13:28:41 | 정연비 기자

한번쯤은 잊혀진 땅,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첫 크루즈 여행으로 탑승하게 됐던 롯데관광의 한-러-일 크루즈가 정박하는 기항지 중 한곳으로 우연히 방문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과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는 단순히 러시아를 대표하는 도시가 아닌 불꽃같이 살아왔던 러시아 연해주 한인들의 처절한 삶의 터전이었다.  

 

▲ 블라디보스토크항

 

현재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우리나라와도 가까워 기항 노선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한창 러시아에 대한 여행자들의 관심도 높아진만큼 여행지로서 러시아 인기는 하늘을 점점 찌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더불어 러시아 극동 교역 도시 가운데 하나다.  마침 지난해 상해임시정부설립 100주년인 해를 맞아 롯데관광은 한러일 크루즈 상품의 기항지 일정 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가량 떨어진 우수리스크를 방문하는 일정을 마련해 연해주 독립운동 유적 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아직까지 이름도 생소한 이 도시가 속해있는 연해주는 우리의 역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연해주는 과거 말갈의 땅이었고 나중에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의 영토로 편입됐다. 이후에는 여진족이 이곳을 차지했는데 청나라 때 러시아에 할양되면서 러시아의 공식적인 영토가 됐다.  러시아는 한국과 두만강 하구를 사이에 둔 이웃으로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다 연해주 한인 이주는 1863년 함경북도 경흥의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지신허에 정착했고 이후 연추, 추풍, 해삼위, 소왕령, 수청 등 각지에 한인사회가 형성되며 발전했다. 

 

■ 대륙의 영혼, 러시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 최재형 선생 고택/ 최재형 선생 동상/ 최재형 선생 동영상 관람 공간/ 최재형 고택 내부

 

우수리스크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무대가 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볼 수 있는데 연해주 지역이 항일민족운동의 본거지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논할 때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우수리스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운 이들 중 최재형이란 이름을 아는 이는 근래까지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최재형 선생은 멀리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함경도 노비의 자녀로 태어난 그는 연해주로 이주해온 후 군수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 부를 허투루 쓰지 않고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의병들에게 성능 좋은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 내에서 항일 의병 세력들을 모아 무장단체 ‘동의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적극적인 무장 독립운동을 펼쳐왔지만 러시아 내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침입한 일본군에게 체포됐고 재판도 없이 즉시 총살됐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숨은 공로자이자 시베리아 항일운동의 대부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으로 임명된다. 노비 출신의 자산가였지만 그는 동포들에게 항상 따뜻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 최재형 고택 내부2/ 최재형의 사진 / 최재형의 페치카 / 최재형 고택 입구 / 최재형 고택 표지판

 

우수리스크에는 최재형이 일본군에게 체포되기 전 거주했던 집도 남아있다. 지금은 최재형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활약상을 전시한 기념관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투어에 참가한 일행들과 선생의 생가를 외관부터 천천히 둘러봤다. 집의 창문은 체포 당시 일본군이 발포했던 총에 의해 파손된 창문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깨진 상태 그대로 두고 있어 당시의 긴박함이 절로 전해진다. 그의 흔적을 전시해놓은 공간 입구에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사용하던 난로(페치카)였다. 페치카는 난로라는 뜻의 러시아로 시베리아 항일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의 동포를 향한 따듯한 마음을 엿보게 하는 애칭이기도 하다. 당시 최재형의 가옥에 남아있던 페치카의 원형을 복원해 전시해둔 것이다.

 

내부는 연해주 한인 이주 초기 당시의 연해주 상황부터 최재형 선생의 활동들이 연대별로 관련 흔적들과 보기 좋게 정리돼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공간에서는 최재형 선생 일대기 관련 동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다.  2020년은 최재형 선생이 조국의 항일독립투쟁에 모든 재산과 목숨까지 바친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깊다.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는 2020년 최재형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을 펼치기 위해 계획을 밝히며 많은 후원과 격려를 부탁하기도 했다. 

 

■ 고려인의 삶과 기억의 저장소 ‘고려인문화센터’

 

▲ 고려인문화센터 내부1,2,3,4/ 고려인의 아리랑

 

최재형 선생의 고택만큼 우수리스크에서 중요한 곳은 고려인 문화센터로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흔적들을 전시해놓은 우수리스크의 관광안내소와도 같은 곳이다.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9년 건립된 고려인 문화센터는 1860년대부터 이뤄진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를 비롯해 독립운동사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전시뿐 아니라 현재도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후세들을 위해 한글 교육과 문화 예술 공연장으로 사용중이다. 문화센터입구로 가는 한쪽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위치해있다. 

 

센터의 전시실은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세기 후반 고려인의 생활문화로 1800년대 이전 조선시대의 전통에 기인한 연해주 이주민들의 생활문화를 소개했다. 

 

두 번째로는 1800년대 연해주 정착이후 고려인의 삶과 항일투쟁 역사를, 마지막으로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한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이 고려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소개되어 있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고려인역사관으로 1860년대부터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의 삶과 기억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고려인역사관이 속해있는 우수리스크는 연해주 제2의 도시이자 당시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1937년 20만 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이후 고려인의 명예회복법이 통과되고 많은 고려인들이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게 됐다.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난 150여 년을 삶을 충실하게 일궈온 고려인의 역사와 자취를 만날 수 있었다. 

 

■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 독립을 염원 ‘이상설 유허비’ 

 

▲ 이상설 선생 유허비/ 수이푼 강


예능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의 출연진들도 방문해 대중들에게 눈길을 끌었던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도 우수리스크 외곽 쪽에 마련돼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위종과 함께 특사로 파견됐다. 그곳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전 세계에 알리려 하였으나 결국 일본의 훼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이 선생은 1910년 성명회를 조직해 한일합방 반대 운동 및 합방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각국에 발송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또한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재형, 김학만 등과 권업회를 조직, 권업신문을 발행해 교민들에게 독립 사상을 고취시켰다. 1914년에는 이동휘, 이동녕 등과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결국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병을 얻은 그는 사망 직전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뒤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며 애통한 마음 전하기도 했다. 


기항지 투어에 참가하며 현지 상황에 능통한 가이드의 안내로 방문했기에 정확히 찾아갈 수 있었지만 선생의 유허비는 우수리스크 중심에서도 떨어진 외곽에 있어 별도로 방문할때는 조금 어려울수도 있다. 선생의 유골은 유언대로 화장돼 유허비가 마주보고 있는 수이푼 강에 뿌려졌다. 

 

■ 대한국민의회의 전신 ‘전로한족중앙총회’

 

▲ 전로한족중앙총회 / 러시아 소녀들

1919년 삼일 운동 직후 국내외 최초로 임시 정부를 선포한 대한국민의회의 전신(前身)이었던 전로한족중앙총회 건물도 우수리스크에 남아있다. 1918년 6월 전로한족중앙총회는 정식 조직됐고 해당 건물에서 1918년 6월13일부터 23일까지 민족의 자치와 항일 독립운동을 추진하려는 목적의 제2회 특별 전로한족대표회의가 개최됐다. 


현재는 학교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 내부 관람은 어렵고 외부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등하교 시간에는 러시아 아이들이 관광객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카메라에도 순수하게 웃어 준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정연비 기자 jyb@ttlnews.com
취재협조=롯데관광 www.lotte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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