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 스위스 몽트뢰(Montreux)를 사랑한 락커
퀸의 성지 몽트뢰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 흔적들
2016-04-06 08:45:28 | 권기정 기자

 프레디 머큐리, 스위스 몽트뢰를 사랑한 라커

남자애들이면 으래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잠시 강렬한 비트와 폭팔적인 락 사운드에 심취해 있을 시기가 있다. 그때 만난 그룹 퀸,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

 어쩜 남자가 이런 목소리를 가졌을까 하는 ​ 궁금증과 묘하게 끌리는 음악, 그룹 퀸(Queen)의 멜로디는 퀸을 좋아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그 땐 프레디 머큐리가 양성애자라는 사실도 몰랐고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도 몰랐었다. 만약 알았다고 해도  에이즈(AIDS)나 양성애자가 뭔지 제대로 몰라 개념 자체가 희박할 시기였으니, 다른 이유없이 그 당시 나는 단지 퀸의 음악이 좋았을 뿐이었다. 퀸의 음악을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프레디가 남들과 다른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은 조금씩 이해가 된다. 그의 음악적 열정이나 재능은 일반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사랑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기의 재능을 표현하기에는 남들과 다른 방법이 필요했을거라고 나답지 않게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한다.  그의 음악은 락이라는 강렬한 사운드에 비해 역설적으로 섬세하다.​ 프레디가 표현하는 음악을 듣다보면 그가 이성애와 동성애를 같이 선택한 것이 이상하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 그는 그럴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다. 나는 동성애나 성적소수자를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매우 역겹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레만호수를 바라보고 서있다.

프레디 머큐리가 자기의 두번째 고향이라 부르며 사랑했던 도시가 있다. ​바로 스위스 레만호(제네바호) 의 작은 도시 몽트뢰 (Montreux)다. 인구는 2만정도 되는 작은 도시로 인근에는 오드리 헵번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모르주가 있고, 역시 매카시의 광풍으로 인해 미국을 떠난 찰리 채플린이 살았던 브베이가 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지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몽트뢰로 가라("If you want peace of mind, come to Montreux")"  고 말할 정도로 이곳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은 레만호의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어 저절로 마음의 평화가 올 것 같은 곳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1978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발에 참가하며 그룹 퀸 멤버와 함께 앨범 "Jazz"를 녹음한 이후 몽트뢰와 레만 호수에 반하여 이곳에 정착한다. 1978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몽트뢰의 마운틴 스튜디오에서 거의 모든 음반 작업을 하며 이곳에서 지냈다​.

Queen - I Want To Break Free

 프레디 머큐리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났다. ​인도출신의 부모님이 당시 영국령이었던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공무원을 했는데 잔지바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인도 뭄바이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고 전해진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닌 머큐리는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한다. 예전 케냐에 잠시 살 때  잔지바르에 갔는데 그곳에 있는 프레디 머큐리의 생각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잔지바르는 산호가루가 넓게 펼쳐진 해변과 스파이스 투어로 유명한 섬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락커의 고향이 아프리카 라니 하고 신기한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대학 졸업 이후 음악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그의 삶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섬세한 예술적 감성은  이미 어릴적 부터 있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미술이냐 음악이냐 하는 자신의 표현 방법만 달랐을 뿐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처연한 느낌마저 드는데 그가 가진 예술적 영감과 표현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뇌와 뭔가 특이한 그의 정신세계때문이지 않았을까?​  인도인이라는 태생 역시 그가 동양적 느낌에 서양의 음악이 접목된 무엇인가가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똘끼 충만한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 상식을 파괴하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지 않았나 싶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것은 분명하니까.

 

▲ 몽트뢰에서 바라본 레만호수 

스위스 여행에서 내가 좋아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준비부터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단지 그의 동상과 그가 작업했던 작은 스튜디오의 낙서가득한 문을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소개틴 하기전 마음이 두근거리는 바로 그 느낌,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바로 그런 감정이다. 몽트뢰의 시옹성보다는 프레디 머큐리의 흔적이 더 좋았다. 동생들은 시옹성이 좋다고 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시옹성이 없었다면 몽트뢰는 여행 중에 찾아가지 않았을 것 같다. 루가노의  헤르만 헤세와 몽트뢰의 ​프레디 머큐리의 흔적은 스위스 여행에서 중요한 방문지였다.

 

 

▲ 프레디 머큐리의 바로 이 자세

그는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그가 가진 특유의 자세로 서 있는 동상은 콘서트장에서 노래 부르는 그의 특유의 느낌으로 서있다.  동상을 보면 그가 다시 살아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룹 퀸의 대표곡 보헤미한 렙소디(Bohemian Rhapsody) 의 멜로디가 떠오른다.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곡이다.

 

▲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동상 뒤에는 호텔과 쇼핑센터, 마르쉐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동상 아래에는 1년 내내  프레디 머큐리를 기념하는 팬들이 가지고 온 꽃다발과 추모하는 물건, 편지가 놓여있다.  우리의 동상과는 많이 틀리다. 근엄하거나 위압적인 우리의 동상과는 다르게 그 인물이 살아 생전의 가장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것 같다.  

 

 

▲ 프레디 머큐리의 사진, 빛바랜 청바지와 '란닝구'를 입은 프레디 머큐리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 프레디 머큐리가 평소에 작업했던 마운틴 스튜디오가 있던 카지노 건물

마운틴 스튜디오는 지금은 카지노의 부속건물로 남아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78년부터 91년 그의 꿈같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몽트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음반 작업을 했다. 머큐리가 죽고 난 뒤 나온 퀸의 유작 앨범<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의 재킷 사진도 몽트뢰에 세워진 머큐리의 동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프레디 머큐리가 평소에 작업했던 마운틴 스튜디오 입구 

프레디 머큐리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이 와서 그를 추모하거나 기억하는 낙서를 잔뜩 해놓았다. 팬심을 알 수 있는 풍경, 솔직히 이런 팬덤 문화가 부럽다. 여행중 시간을 내 프레디 머큐리가 작업했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길은 ​ 마치 멀리 있는 친구집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언제 가든지 반겨줄 것 같은 바로 그런 것. 방송에서는 안을 공개해주었지만 개인이 가서는 그저 문만 바라보고 왔을 뿐이다. 같이 간 동생들은 눈만 끔뻑끔벅 한다. 그들이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을 잘 알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으니 낙서 가득한 그저 그런 건물일 뿐이다. ​

 

▲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 1995)'의 앨범 재킷.

앨범 재킷은 몽트뢰에서 가장 좋아했던 호수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제작되었다. 다큐에 보니 이집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다고 한다. 대표곡은 ‘헤븐 포 에브리원(Heaven for Everyone)’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 1995)' 앨범 제작 후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지금의 레만호수 앞에 세워졌다.(1996)  ​

 

몽트뢰= 권기정 기자 John@tt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