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철망을 들추니 역사·문화유산이 보였다
파주 DMZ, 역사, 문화 새롭게 조명
쉽게 접근키 어려운 역사의 현장 실감
2018-08-22 00:30:11 , 수정 : 2018-08-22 08:08:04 | 이상인 선임기자

[티티엘뉴스] DMZ와 함께 묶여버린 역사의 철조망을 조심스레 들춰내는 기분입니다.
 

4.27 판문점 선언과 정전협정 · DMZ 생성 65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한반도 중심, 중서부 DMZ 역사 · 문화여행’ 의 두 번째 일정은 안보라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의 진한 감동을 경험하는 또 다른 세계를 드려다 보는 마음이었다.  


그 시대를 깊이 쪼개며 들어갈 때 느끼는 짜릿한 감성을 통해 구석기시대를 맛보았고, 타임테이블을 반쯤 당겨 조선 시대의 명의 허준 선생을 만났으며, 빠르게 재촉해 6.25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문제의 답을 미리 알고 보는 시험이 역사가 아닌가. 2일 차 일정 속으로 빠져본다.

 

●연천 전곡리 유적지


구석기시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 전곡리 유적지.

▲전곡리 선사유적지 정문 입구 모습
 

이곳은 1978년 3월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에 의해 발견됐다. 그해 5월 서울대 김원용 교수를 중심으로 한 조사단에 의해 전곡리가 구석기시대 유적라는 것이 본격 세상에 알려졌다.

▲유적지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30여 년에 걸쳐 총 17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으며, 대략 8,500여 점의 구석기시대 유물을 발견했다. 전곡리 유적의 석기들은 인근에서 채집한 강자갈로 제작됐으며, 주먹도끼 등 다양한 찍개와 가로날도끼와 같은 대형 석기들과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긁게와 소형 박편들이다. 
전기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독특한 문화적 특징으로 전곡리 유적의 연대는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곡리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0만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전곡리 유적지 내 거주지 모습

 

전곡리 유적지에는 선사문화관리사업소, 김원용 선생 추모비, 토층전시관, 선사체험마을, 야생화 단지, 구석기생활상 복원존, 구석기 산책로, 전곡선사박물관, 발굴피트 전시관, 생태습지, 역사문화공원, 한탄강관광지 오토캠핑장, 한탄강 어린이 교통랜드 종합관광안내소, 매점 및 기념품 판매소 등의 시설물이 있다.

▲선사 시대 사냥하는 모습의 조형물

 

매년 어린이날 전후로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가 개최된다. 최대 규모의 구석기문화축제로 매년 9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대표 선사문화축제다.

 

또한, 선사체험마을에서는 선사시대의 기술, 생활 방식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으로 매년 봄마다 개최된다.

 

 
●적군 묘지

 

"세상 좋아졌네. 적군도 묘지를 만들어 주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적군 묘지 입구에 설치된 표지판

 

적군 묘지는 제네바 협정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정부가 지난 1996년 6월 6·25전쟁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조성한 묘역이다.

▲적군 묘지 제1묘역의 모습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서 전사한 1,080구의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그리고 1·21사태 등 무장공비로 침투했던 북한군들이 잠들어 있다.

▲적군 묘지에 안장된 모습,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적군은 이름을 모르는 무명인이 대부분이다.

 

총면적은 6,099㎡로 1 묘역과 2 묘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1 묘역은 북한군, 2 묘역은 북한군과 중국군이 함께 있었으나, 2013년 중국군 유해는 자국으로 송환됐다.

 

파주군 적석면 답곡리 산55번지에 위치해 있다.

 

●파주 동파리 DMZ 해마루촌

 

DMZ 해마루촌,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비를 하고 있는 군인에게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맡겨야 한다. 민간인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민통선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식당과 카페가 있는 해마루촌 내 휴게소의 모습

 

출입신고를 마치면,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데, 이 다리는 누구도 도보로 건널 수 없으며, 반드시 차를 타고 건너야 한다. 

 

약간 지루한 통과 절차를 마치고 좁은 길을 달려 들어가면, 제각기 다른 형태의 비교적 깨끗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이 바로 민통선 내에 실향민들의 정착촌으로 지난 2001년 처음 조성된 ‘DMZ 해마루촌 마을’이다. 해마루촌은 동파리(東坡里)를 순수 우리말로 고친 것.

▲휴게소 앞에 마련된 DMZ 해마루촌 평화갤러리의 내부 모습

 

해마루촌의 집에는 담과 지번이 없고 각 집의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 또한, 집은 주소 대신 1호, 2호 식으로 호를 붙여 부른다. 마을 조성 시에 추첨으로 호수를 정했다고 한다.

 

이곳은 몇 해 전 인공위성을 통해 마을의 도로가 높은음자리표 모습으로 되었다고 알려지면서 ‘높은 음자리표 마을’로도 불린다.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지고 있다.

▲DMZ 해마루촌 평화갤러리 입구의 모습

 

해마루촌 인근 임진강의 유일한 섬인 초평도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에 위치해 있다. 6·25 이전에는 논이었지만, 휴전협정 이후 사람이 거주하지 않게 되면서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개인소유로 되어 있는 초평도의 면적은 여의도의 약 2/3 정도인 176만 5천㎡이다.

 

해마루촌 1호 집에 거주하고 있는 조봉연 이장 인터뷰


해마루촌 1호 집에 거주하고 있는 조봉연 이장(▲)은 이 지역의 토박이답게 마을의 역사적 배경과 주변 사항과 부근, 그리고 유적지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도 곁들였다.

 

해마루촌 너머로 흐르는 임진강과 초평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초평도는 경기도에서 매입키로 되어 있었는데 홍수로 인해 잠기자 매입을 포기했다”라며, “현재는 개인이 매입해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철책선 인근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조 위원장은 “경기도의 유일한 섬인 초평도 인근 강에는 각종 철새들이 많이 있으며,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새들이 이곳에 날아오며, 초평도 부근 강은 황복의 산란장으로 유명하고, 민물장어 치어 등 80여 종의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파리는 슬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며, “임진왜란 당시 선조 대왕이 몸을 피하고자 임진강 동파나루를 거쳐 갔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동파나루가 이곳 동파리”라고 말했다.

 

조 이장은 시범투어단을 위해 허준 선생의 묘역에서도 해박한 지식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민통선 수복 마을인 DMZ 해마루촌에서 만난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 인터뷰

 

민통선 수복 마을인 DMZ 해마루촌에서 만난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은 관광객 방문에 대한 질문에 “최근 종전 논의가 되고 있으니까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을 생각한다. 다만 현재까지는 (관광객 방문에 대해) 예상만 하는 상태이며, 식사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숙박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외부의 많은 분이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하고 있지만, 지금은 유엔사령부 관할로 되어 있어 직계가족과 친척만이 유엔사의 허락을 받아 출입이 가능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로 불가능한 상태로 외부사람들의 방문이 어려운 상태”라며, “그러나 분위기가 잘 조성되면 많은 사람들이 대성동 마을을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향후 남북문제가 평화적으로 잘 해결되어 출입이 가능해진다는 가정하에 대성동 마을에 간다면 무엇을 볼 수 있냐는 물음에 “대성동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이 잘 몰랐던 부분을 볼 수 있다. 실질적인 생활 모습으로 대성동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느끼실 것이다.

 

북쪽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생활 모습을 보는 것도 또 다른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하면서, “예를 들면, 체제상의 문제 등으로 서로의 국기를 더 높게 게양하기 위해 태극기와 인공기 게양에 대한 경쟁 등의 모습도 외지 사람들에게는 이색 볼거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성동 마을은 현재 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와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있는 특수한 마을로 유엔사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일명 ‘자유의 마을’로 불리는 이 마을의 특별한 점은 주민 중 남자는 군대에 가지 않으며, 세금도 내지 않으며, 여자가 시집을 오면 이곳에서 살 수 있지만, 남자들은 대성동 출신 마을 처녀와 결혼을 해도 이곳에서 살 수가 없다.

 

또한, 일반인들이 이 마을을 방문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하며, 친척이나 직계가족들만 유엔사령부에 허락을 받아 출입할 수 있다.

 

현재 47세대 193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95%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외부에서 출퇴근 형태로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의성 허준 선생 묘

▲의성 허준 선생 생모의 묘로 추정되는 위치에서 내려다 본 허준의 묘 전경, 아래 보이는 쌍묘가 허준과 부인의 묘. 그 아래 보이는 집은 재실(묘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로 초상화가 있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명의 허준(許浚)의 묘는 임진강 건너 DMZ 내에 위치해 있어 그동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재실에 모신 의성 허준 선생의 초상화. 이곳의 초상화는 실재 얼굴이 아니며, 진주박물관의 초상화가 허준 선생의 진짜 얼굴로 알려져 있다

 

허준 선생의 묘는 재미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 씨가 양천허씨 족보에 기록된 ‘하포리 광암동 손좌쌍분’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군부대의 협조 아래 끈질긴 노력 끝에 찾아냈다. 이양재 씨는 허씨들이 모여 살았을 것을 추정되는 옛땅을 중심으로 허준 선생의 묘를 찾기 시작했다.

 

▲의성 허준 선생과 부인 안동 김씨의 묘소 모습

 

발견 당시 봉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헤쳐졌고, 묘비, 문인석 2기, 상석, 향로석이 묘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묘비는 두 쪽으로 잘려져 있었는데, 마모된 비문 가운데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라는 명문 등으로 허준의 묘라는 것이 확인됐다.

 

▲허준 선생의 묘를 찾은 시범투어단이 조봉연 해마루촌 이장으로부터 허준과 묘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현재 대한한의사협회 소속 형상학회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묘소도 잘 조성되어 있다. 묘의 우측은 부인 안동김씨의 묘, 위쪽에는 허준의 생모로 추정되는 묘가 자리하고 있다.

 

▲ 2011년 5월 11일 의성허준기념사업회가 묘소 앞에 건립한 중건비

 

묘소 주변에는 밤나무, 자작나무, 진달래, 생강나무 등 한약으로 쓸 수 있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묘소 아래 위치한 재실에 초상화가 있는데, 실재 인물이 아니고, 진주박물관의 초상화가 허준 선생의 진짜 얼굴로 알려졌다.

 

 ▲허준 선생의 묘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시범투어단 일행

 

지난 1992년 6월 5일 경기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됐으며,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구암로 205(진동면 하포리 산 129)에 있다.

 

한의학의 명의로 잘 알려진 허준은 16년 만인 1610년(광해군 2) 방대한 의학서인 25권 25책의 ‘동의보감’을 완성했으며, 지금까지도 동양의학의 보감이며, 백과 전서로 불린다.

 

●캠프 그리브스 - DMZ 체험관

 

캠프 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이후 50여 연간 미군이 주둔하던 공간으로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캠프 그리브스의 일부 모습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오래된 미국 기지 중 한 곳인 캠프 그리브스는 미2사단 101공수 506연대가 머물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으로 미군의 건축양식이 축적된 문화유산이다.

 

▲경기관광공사가 10월까지 매주 주말 캠프 그리브스 내에서 거리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미군 철수 이후 그 역사, 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철거위기에 놓였지만,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2013년 민간인들을 위한 평화안보 체험시설로 리모델링하여 민간인 통제구역 내의 유일한 체험형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 내 '태양의 후예' 촬영시 사용했던 군용 천막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의 촬영지였으며, 인기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우르크 태백부대 본진 촬영지로 유명한 캠프 그리브스에서 유시진 대위와 같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이 되어 보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캠프 그리브스 종합 안내도

 

또한, 주한미군부대의 역사, 문화적 가치에 문화예술을 결합한 문화재생사업의 특별한 전시와 함께 10월까지 음악, 연극, 무용, 마술 등 다양한 거리공연이 진행되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인기 TV드라마 였던 '태양의 후예' 명장면의 모습이 캠프 그리브스 내에 설치되어 있어 이곳에서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내 유일한 민통선 내 체험형 숙박시설인 ‘DMZ 체험관(유스호스텔)’에서는 최고의 청소년지도사와 함께 다양한 평화, 통일,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임진각

▲임진각의 표지판

 

▶6·25전쟁 납북자 기념관

▲국립 6·25전쟁 납북자 기념관 입구의 모습

 

국립 6·25전쟁 납북자 기념관은 납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로하며,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공간이다.

 

▲기념관 1층 입구에 납북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상설전시는 ▶납북의 배경과 원인 ▷잃어버린 사람들 ▷분열의 시대 ▷1950. 6. 25 ▶남북의 전개과정과 납북자의 고통 ▷치밀한 납북계획 ▷표적이 된 사람들 ▷대대적인 납치 ▷감금과 고문, 그리고 북송 ▶귀환 노력과 납북자 가족의 아픔 ▷납북의 규모 ▷좌절된 귀환

 

▲Zone 2 - 납북피해 가족들의 눈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채울 수 없는 빈자리 ▷남은 이의 아픔 ▷귀환을 위한 노력 ▷잊지 않기 위하여 ▶납북과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 ▷계속되는 납북 ▷슬픔을 멈추기 위하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군 참전비와 트루먼 대통령 동상

 

6.25 한국전쟁에 미국은 파병 국가 중 가장 많은 병력인 572천명을 각종 전투에 참전시켰다.

 

▲임진각 내에 위치해 있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국군 참전기념비의 모습

 

전공을 세우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기리기 위해 이 비를 건립했다.

▲미국군 참전기념비를 에워싸고 있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 그앞에는 트루만 당시 미국 대통령의 동상 모습

 

참전비 주위의 삼각형 부조 4개는 육, 해, 공과 해병대의 참전을 의미하여 조각됐으며, 삼각형 위에서 모두 연결된 것은 단결을 상징하며, 국기게양대 50개는 미국의 당시 50주를 나타내고 내부 가운데 비는 영령들을 국민모두가 보호 안치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희생된 일본계 미국 장병 247명의 넋을 기리는 위한 위령비 

 

미국군의 참전피해는 연인원 57만2000명이 참가해 사망 3만3629명, 부상 10만3284명, 실종 5178명으로 총 14만2091명이다. 

참전비 앞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에스 트루만 대통령 동상▲)이 서 있다.

 


●오두산통일전망대

▲오두산통일전망대 로고와 마크

 

오두산통일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자유로 변 산등성이에 있다. 이곳에서는 북한 땅이 한눈에 보인다. 분단의 현장을 직접 보고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현장체험 통일 교육 장소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입구에서 투어시범단 일행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체험을 즐기고 있는 어린이

 

지하 1층에는 비무장지대 영상관, 신나는 통일(놀이체험), 통일로 가는 길(퍼즐), 야외 쉼터 등 어린이 체험관과 야외 쉼터가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1층 실내의 모습

 

지상 1층은 남북관계사, 영상실(기억을 찾아서), 염원실(전자 방명록), 한반도 정책, 통일 피아노, 포토존(통일열차), 역대 대통령 통일 휘호, 기획전시실 등 전시실, 영상실, 염원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 마련된 그리운 내고향. 6만여 명의 실향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이산가족이 그린 그림과 사진, 편지 등을 이용해 만든 3인치 정사각형의 설치미술 작품 5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은 그리운 내고향: 이산가족 그림으로 만든 설치미술 작품(▲), 극장(200석): 북한의 실상 상영 및 문화 공연 등 전시실, 극장으로 되어 있다.

▲3층 실내 전망대. 손기수 운영팀장이 방문객들에게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북한지역의 지형 등을 설명하고 있다

 

3층은 300석 규모의 전망실(영상으로 지형 설명), 야외 전망대, 외국어(영, 중, 일) 영상 설명 등 전망대가 있다.

▲야외 전망대의 모습.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지역의 모습을 더욱 가깝게 볼 수 있다

 

4층은 전망 휴게실, 야외 전망대 연결 다리, 야외 전망대 등 전망 라운지, 야외 전망대 등이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야외에 있는 실향민을 위한 망배단. 자유로 방향으로 되어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야외에 위치한 통일기원북의 모습

 

▲오두산 통일전망대 야외에 있는 조만식 선생님의 동상, 조만식 선생은 분단이 되어선 안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고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고 있다

 

옥외시설로는 망배단, 통일염원비, 통일기원북, 조만식선생상 등이 야외에 배치되어 있다.

 

손기수 오두산통일전망대 운영팀장 인터뷰


손기수 오두산통일전망대 운영팀장은 “최근 평화안보 관광지를 많이 찾고 계신데, 외국인들보다도 내국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 주어 감사하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라면서, “분단의 상징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기행이 되고, 남북 개선에 있어서 평화를 생각하는 서로의 한마음 한뜻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손 팀장은 “우리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찾아 주시면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더욱 적극 안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포 용강리 매화미르 마을

▲매화 미르마을에 있는 체험관의 모습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는 민통선 안에 있는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생태 마을이다. 민통선 안에 있어 둘러싸인 철책선으로 처음엔 조금 낯설지만 최근 남북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예전과 같은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매화 미르마을 앞에 설치된 철책선의 모습


 
이곳에서 개성까지는 불과 40Km로 날씨가 좋으면 개성 송악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철책선 강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이 너무 가까이 있어 북한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매화 미르마을은 민통선 내 위치해 있어 비교적 공기가 맑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체험관 앞에 핀 연꽃

 

민통선 내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아 수도권에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조용하게 쉴 수 있는 지역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시범 투어단 일행이 매화 미르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투어용 트랙터 카트를 타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포 조각공원을 지나 포장된 길을 따라가면 해병 검문소가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면 용강리 매화미르마을을 만날 수 있다.

 

취재협조: DMZ관광,  DMZ문화원

 

파주 지역 DMZ = 이상인 선임기자 lagolftime@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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