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투어▶암살] 잊지 않으려는 발걸음이 닿는 곳
2015-08-05 23:13:28 | 임주연 기자

승리하지 못할 싸움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암살>(쇼박스미디어플렉스 배급)은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다. 감독은 그 사진을 모티브로, 신념의 독립군 저격수인 안옥윤과 상하이의 무법자 ‘하와이 피스톨’,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 등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점을 몇 가지 추려봤다.

 

# 옛적 명동거리를 잘 재현했다?

상하이 처둔(车墩)에는 잉스러위엔 세트장(http://www.shfilmpark.com/en/index.aspx)이 있다.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 크기의 대규모 세트장으로, 상하이의 최대 번화가인 남경대로의 옛적 모습을 잘 재현하고 있다. <색,계>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암살>에서는 명동거리와 미츠코시 백화점을 잘 고증했다.

세트장 입구에는 현재 어떤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지 팻말이 붙어있다. 붙여 놓는다. 중국어로 써 놓으니, 중국어를 하지 못하면 아쉬울 수 있다. 입장료는 80위안(약 1만5000원)이다.

 

# 사치의 절정, 미츠코시 백화점

세트 중 미츠코시 백화점은 단연 돋보인다. 제국주의 시절 권력가들의 결혼식이 열리는 곳이며 온갖 신문물을 가장 빠르게 만나던 곳이다. 영화 속 백화점은 3층 건물에 CG(컴퓨터 그래픽)로 1층을 더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제작진은 미츠코시 백화점이 실제로도 화려했으나, 고증한 것보다 좀 더 화려하게 꾸몄다고 한다. 백화점 내부로 발을 들였을 때, 압도적인 화려함에 기죽을 정도로 말이다. 미츠코시 백화점 자리에는 현재 신세계백화점이 있다.

 

# 미라보 여관 앞엔 황포강이 흐르고…

<미라보 여관에서 만난 세 사람>

미라보(Mirabeau)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의원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루이16세와 의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미라보는 프랑스 혁명을 온건한 방향으로 끌어가고자 했으나 갑자기 사망했다. 그럼에도 그는 중재를 잘 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이름을 딴 프랑스의 미라보 다리와 미라보 호텔을 남겼다. 지금도 프랑스에는 미라보 다리를 건널 수 있다. 미라보 호텔을 배경으로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시인은 <미라보 다리>라는 아름다운 시를 적어 혁명을 노래했다.

 

미라보 여관 앞에 황포강(黃浦江)이 흐르고

우리들의 선혈도 함께 흘러간다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으리

독립(獨立)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총성(銃聲)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무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들의 팔 밑으로

독립을 향한 염원이

영원한 눈길처럼 지나갔다네

 

밤이여 오라 총성(銃聲)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무른다

(중략)

 

‘독립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이라는 문구가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반추하게 한다.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겠냐”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의 말에 안옥윤(전지현 분)이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고 답한 장면 또한 떠오른다. 독립을 향한 염원이 눈길처럼 지나가지만, 그 눈길은 영원하다.

 

# 독립군의 은신처, 아네모네 카페

아네모네의 꽃말은 ‘배신, 속절없는 사랑’이다. 아네모네 마담은 독립군 연락소 책임자로 일하면서 언제고 이런 결말을 당하리라 예상했던 것처럼 행동한다. 배신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독립군은 실제로도 많았다. 그렇게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간 이들이 있었기에, 경성 아닌 서울이 있다. 지금 서울을 꽃으로 치자면 검붉은 장미일 듯하다. 수많은 이들의 피가 떨어진 경성에 피어났기 때문이다.

 

 임주연 기자 hi_ijy@tt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