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옥션] 삼청동에서 만난 하산 하자즈
강렬한 초록 & 노랑 원색… 부티크 재현
바라캇 갤러리, 런던·LA·홍콩 이어 서울 진출
2020-09-15 16:46:49 , 수정 : 2020-09-15 20:52:24 | 이린 칼럼니스트

[티티엘뉴스] 나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의 주요 도시를 방문할 때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내겐 커다란 행복을 주는 장소다.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자유가 부족할 땐 책과 영화 등을 통해 미술 작품 속 스토리를 여행하고 상상하며 꿈을 꾼다. 어떤 공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은 물론 작가의 인생을 만날 때면 나는 그저 작품 앞에 존재하고 있지만, 또 한 명의 타인의 삶과 또 다른 우주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술관 건축부터 공간의 연출 분위기와 걸려있는 작품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열정으로 만들어진 이 모든 것들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 하산 하자즈 바라캇 컨템포러리 1

 

토요일 오후 삼청동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선 바라캇 갤러리에서 회장 파에즈 바라캇과 그의 작품을 만났다. 이곳을 방문해 그분이 수집한 방대한 고대 예술품과 아티스트로서 열정적으로 작업한 자유롭고 넘치는 에너지의 작품들을 소개받았다. 갤러리는 토요일 6시면 문을 닫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특별히 바라캇 컨템퍼러리갤러리 개관 시간을 연장해 투어를 마련해 준 전시를 소개한다. 
 

갤러리에 내 오른발을 디디는 순간 초록과 노랑의 강렬한 원색이 어우러진 벽과 바닥에 시선을 빼앗겼다. 너무나 이국적인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타일을 이어 붙이 듯한 벽지와 그림과도 같은 서체의 아랍어 문구 낙타 문양 등이 공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외부와 다른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개막한 하산 하자즈(Hassan Hajjaj·59) 개인전 <다가올 것들에 대한 취향> 전경이다.

 

▲ 하산 하자즈 바라캇 컨템포러리 2

 

# 하산 하자즈는 얼마나 ‘핫’한가? 

 

▲ Hassan by Jenny Fremont 4_DSC0718

 

하산 하자즈는 ‘모로코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며 마돈나가 추앙하는 작가이다. 1961년 아프리카와 유럽의 접경에 위치한 모로코에서 태어났다. 10대에 시절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로 언어장벽과 인종차별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내야 했다. 스트리트패션과 흑인음악을 즐기던 그는 20대 초반 모국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서구적 사진계의 시선에 함몰된 아프리카인과 아랍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그였지만 창조적 정신으로 자신만의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서구적 시각에서 ‘이국적인 것’으로 다뤄지고 있던 북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프리카인을 중심에 두고 사진,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시작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 충돌하는 런던의 삶과 고향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정체성을 접목해 경계인의 시각을 투영해 개성 있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모로코와 런던을 오가는 그의 첫 한국전

 

이번 전시에서는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사진을 비롯해 영상, 설치 등 22점을 선보인다. 문화적 혼종성, 표면적으로는 팝아트, 더 들여다보면 위트가 넘치는 작품 속에 메시지를 담았다. 작업은 유럽과 아프리카, 예술과 상업, 고급과 하위문화 등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감상 포인트 Ⅰ
: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 미학

사진 속 인물들 일부는 슬립온과 비슷하게 보이는 루이비통 소재에 나이키 로고를 붙인 모로코 전통 신발 바부슈를 신고 있다. 모로코시장에서 유명 글로벌 브랜드의 소위 짝퉁을 수집해 작업, 그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신발로 한때 루비이통으로부터 상표권 침해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협업 제안을 받고 있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뿌리인 모로코의 대중문화, 고급과 하위문화를 강렬하게 결합하며 명성을 쌓았다.
 

▲ 포에틱 필그리메이지 스타일링 Poetic Pilgrimage Stylin', 2014_1435, 람다 프린트, 흰색 페인트 도색된 나무 액자, 106 x 141 x 5 cm

 

감상 포인트Ⅱ
: 작품의 힌트가 담겨있는 액자의 프레임 

아랍 문양의 현란한 색채로 감싸줄 뿐만 아니라 액자프레임에 공간을 만들었다. 작품 속 주인공과 연관된 토마토소스병, 통조림 캔, 모로코 전통 모자이크 타일 등으로 장식해 준다. 프레임을 꾸민 캔은 모로코에서 생산되는 물감 캔들로 주인공의 직업인 헤나 타투 아티스트와 연결된다.

 

▲ 나의 록스타 실험 영상 Vo. 2 My Rockstars Experimental Vol. 2 - One Channel, 2013_1434,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최대 4m)

 

감상 포인트 Ⅲ 
: 흥미로운 반전의 연속

'마이 록스타' 연작은 하자즈가 10년 넘게 마라케시, 런던, 파리, 두바이 거리에 팝업 사진 스튜디오를 열어 만난 이들을 촬영한 기록이기도 하다. 재즈 가수 호세 제임스 등 유명 연예인부터 언더그라운드 음악가, 타투 아티스트, 패션 디자이너, 댄서, 무술인, 세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벨리댄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여성이 연상되지만, 실제 사진의 주인공은 남성이다. 

 

감상 포인트 Ⅳ
: 사진 구도의 메시지 

형형색색 화려한 패션으로 등장한 인물들이 개성 있는 포즈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신발과 선글라스로 꾸민 흑인 남성들, 오토바이에 앉아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히잡을 쓴 여인들, 벨리댄서 복장을 한 남자 모두 하나같이 아래에서 위로 앵글을 잡아 인물들을 더욱 당당하게 만들었다.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대담하고 당당하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걸린 인물 사진들은 얼핏 봐선 갤러리 전시장보다는 패션 화보집에 어울릴 법한 분위기다. 명품 브랜드 신발, 선글라스와 두건, 방탄조끼 등으로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게토 가스트로’ 속 흑인 남성들은 주먹을 쥐고 있다. 2018년 작품 속 이들의 주먹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Black Lives Matter'의 의미다. 

 

▲ 게토 게스트로 XL Ghetto Gastro XL, 2018_1440, 람다 프린트, 흰색 유광 스프레이 도색된 포플러 나무 액자, 180.4 x 135 x 11 cm

 

# 다양한 취향 공유·소통 강조

 

하지만 과장된 화려함의 베일을 한 꺼풀 벗겨 내면 작업에는 문화와 젠더 등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는 작가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국가, 인종, 성별,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예술가의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바라캇 컨템포러리 이화영 이사는 “다양한 문화적 취향의 공유와 소통을 강조하는 작가다. 코로나 시대에 서로를 보듬으며 나아가자는 포용적인 세계관이 잘 드러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 부티크 재현

 

작가가 모로코와 영국에서 운영하는 부티크를 재현해놨다. 전통문양으로 장식한 벽과 러그, 붉고 노란 조명까지 아랍의 향기가 물씬 나는 이 부티크는 지금 런던에서 가장 ‘힙’한 곳으로 그가 직접 운영한다.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바비 인형, 재활용한 판지 위에 프린트된 하자즈의 사진 작품, 엽서, 티셔츠 등 직접 디자인한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그의 예술에 반해 팝의 여왕 마돈나는 스스로 모델을 자처했고, 빌리 아일리시도 잡지 모델로 서면서 작가와 협업했다.

 

이린 칼럼니스트 we_together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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