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관광시장도 봄이 도래한다
정국 안정… 늘어난 외국인 수
2017년 관광 회복 원년 전망
2017-02-07 00:59:35 | 김정훈 기자

[티티엘뉴스] 초겨울의 이집트(Egypt)는 따뜻했다. 체감 온도 25℃ 정도의 따듯한 날씨, 시원한 바람에 여행 심리는 더욱 쾌적했다.
 

전설의 흔적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 고대 인류 역사·문명에 관심을 두는 사람, 북아프리카와 중동 문화를 접하고 싶은 사람, 우리나라 1000만 명이 넘는 사람의 종교 성지 등 이집트는 매년 여행 버킷리스트에 꼽히는 곳이다. 정국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에 이집트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급속히 늘고 있었다.


글·사진= 김정훈 기자 danny@ttlnews.com

취재협조= 이집트정부관광청
 


Step 1_ 이집트 문명의 보고 ‘이집트박물관’


이틀에 걸친 경유 편 비행 끝에 카이로공항에 도착했다.  신축된 공항건물을 벗어나자 그때와 똑같은 건물들, 낡은 차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 이내 편안해졌다. 어느 골목에 가면 그때 즐겨 찾았던 현지음식점이, 배낭여행자용 도미토리 숙소가 아직도 있을지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즐거운 상상을 했다.



이집트박물관(사진 ▲)을 다시 찾았다. 이집트박물관은 ‘고대 문명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이집트 및 세계 역사에 해박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 수천 년 된 유물이 일제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상상에 빠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내세를 믿었다. 그래서 파라오의 미라를 만들고 신체의 장기(臟器)를 담아 보관하고, 피라미드 석실에 안장했다. 어느 날 영혼이 돌아와 다시 살아나는 바람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완성해냈다.
 


▲여러 크기의 관에 투탕카문왕의 미이라가 들어있었다


이집트박물관 소장품의 80~90%는 왕가의 계곡 투탕카멘(투탄카문·Tutankhamun) 왕의 무덤 한 곳에서 출토된 유물이라고 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도굴꾼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탈이 없었다면 위대한 고대문명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심히 유감스러웠다.


▲가장 중요한 유물로 꼽히는 로제타스톤. 3개국어로 쓰여져 상형문자 해독의 기초가 되었다.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있다


박물관을 먼저 보고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로 이동했다. 그 안에 어떤 유물이 채워져 있었을지, 파라오의 석실은 피라미드 안 어느 지점에 있을지, 피라미드와 연결된 수로와 신전은 어디에 있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기자 피라미드. 왼쪽부터 멘카우레왕 카프레왕 쿠푸왕의 순서

 

Step 2_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


고대로부터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매년 홍수로 범람하는 나일 강 유역의 토지는 주기적으로 비옥했다. 농사짓기에 좋아서 식량이 풍부했다. 동서고금을 보더라도 물 좋고 먹을 것 많은 지역에서 문명은 꽃을 피우지 않던가. 이집트가 그러했다.


나일 강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의 문명을 열었고 처음으로 화덕을 사용하여 발효된 빵을 구웠다. 맥주를 최초로 만들어 마셨고, 종이의 원형인 파피루스를 발명했으며, 수천 년 전에 고도의 수학과 건축술이 필요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항목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는 ‘세계 최초의 여왕’ 타이틀도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여왕(BC. 1507~1458 재위)이 가지고 있을 정도다. 알면 알수록 경이롭다.


▲아스완 나일강의 펠루카(돛단배)투어


크루즈 여행은 나일 강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펠루카(이집트 전통식 돛단배)부터 최고급 크루즈까지 다양한 배가 유람용, 이동용으로 수시로 운항하고 있다. 10년 전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3일 동안 펠루카를 타고 나일 강을 횡단한 적이 있다. 끼니마다 야채가 많은 뷔페식이 나오고 중간중간 강에 뛰어들어 수영도 하고 섬에 정박해 여행의 묘미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두 시간가량 나일 강 크루즈를 즐겼다. 수준급의 노래와 연주 실력을 가진 밴드가 팝송 및 이집트 전통음악 몇 곡을 부르더니, 큰 천을 빙글빙글 돌리며 회전하는 탄두라 댄서가 나타나 현란한 묘기로 혼을 빼놓는다. 이어서 벨리 댄서가 선을 보인다. 현대 벨리 댄스의 본고장이 이집트인만큼 다른 지역에서 봤던 공연과 차원이 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나일강크루즈에서 관람한 탄두라댄스

 


▲나일강크루즈에서 관람한 벨리댄스


우리나라 돈 2만 원 정도면 공연에 스테이크 만찬까지 충분했다. 한편으론 이집트의 화폐가치 폭락을 실감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늘고 있으니 머지않아 물가도 제 수준에 오르지 않을까 한다.

 

Step 3_ 영욕의 수에즈 운하


이집트 정부에서는 다년간의 준비 끝에 최근 제2 수에즈 운하를 야심 차게 개통했다. 직접 본 수에즈 운하는 세계 여느 강을 압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길이 지닌 이야기는 무려 4000년 전 이집트 파라오 제12 왕조의 세누스레트 3세 때부터 시작된다. 수에즈 지역에 운하를 만들면 지중해와 홍해 사이의 교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으나, 처음에는 홍해까지 닿지 못하고 내륙지방까지만 나일 강을 연결하는 데 그쳤다.


▲수에즈운하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시간마다 운하를 통과하는 호송선단이 지나간다

 

기원전 1380년경 처음으로 나일 강과 홍해를 잇는 초기 운하가 만들어져 로마 시대와 아랍 지배하에서 중요한 수로로 사용됐다. 이후 약 2000년에 걸쳐 수에즈 운하는 파괴와 보수가 반복된다. 16세기부터는 베네치아 상인, 독일, 프랑스 등이 현대적인 해양 운하를 계획하며 주도권 싸움을 벌였고, 곡절 끝에 프랑스가 운하개설권을 가져가면서 지금의 수에즈 운하를 1869년 개통했다. 이후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관장하는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 간섭하게 되면서 갈등을 촉발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에즈 운하 개통 전에는 유럽에서 인도양까지 해로를 이용하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까지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와 홍해가 운하로 연결되면서 항행 거리를 최대 9000km까지 단축할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의 해상 패권 전략 중심을 대서양에서 다시 지중해로 옮기는데 수에즈 운하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가이드는 “이집트 관광경기가 좋았을 때는 관광객 그룹이 하루에 일곱 팀까지 방문했다”고 말했다. 수에즈 운하 호송선단이 통과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다면 장관일 것 같다.

 

Step 4_ 곳곳에서 유구한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카이로


3박 4일의 짧은 일정의 마지막 날, 카이로의 전통시장인 칸엘칼릴리를 찾았다. 노예와 보석을 거래했던 슬픈 15세기의 역사는 오늘날 관광객이 붐비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향수와 금·은·보석류, 향신료와 의류, 물담배 파이프와 기타 제품을 살 수 있는데 흥정은 필수이다.


10년 전의 칸엘칼릴리 시장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것으로 악명 높았지만, 요즘은 다른 모양이다. 잔뜩 긴장하고 첫 번째 가게에서 흥정을 시도했는데 “여러 개를 사면 할인해준다”며 좋은 가격을 제시해서 웃으며 거래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가게에서는 은 세공품을 샀는데 아예 그램(g) 단위로 과금해서 얼떨떨했다. 칸엘칼릴리 시장의 악명은 사라진 건가?



마지막 날의 아쉬움은 칸엘칼릴리 시장 안의 엘피샤위(El Fishawy)에서 물담배로 달랬다. 7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 600년이 넘은 시장, 250년 된 커피숍에서 보낸 망중한에는 각별함이 있었다. 조금 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카이로 외에 룩소르, 아스완, 홍해 지역도 방문하고 물담배도 베두인차(茶)도 원 없이 즐겨보고 싶다.


▶여행정보 및 문의: 이집트정부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http://blog.naver.com/allnewegypt, 02-2263-2330


[영상으로 이집트 둘러보기]

 

글·사진= 김정훈 기자 danny@ttlnews.com

취재협조= 이집트정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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