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치고 마카오
최남단부터 최북단까지 1시간
쇼핑 더 저렴하고 밥값은 비슷
2015-10-28 12:16:53 | 임주연 기자

타국의 하늘을 못 본지 오래다. 일이 밀려서인지,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게다가 지금은 가을이다.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일이 대수냐. 딱, 하루의 휴가는 업무 증진에 효율적이다. 그래서 나는 마카오에 갔다.

 

마카오는 멋쟁이 노인 같다. 성숙하되 지루하지 않아서다. 알록달록 파스텔빛 세계문화유산이 가득하고, 매혹적인 자본주의의 소재들이 눈길을 뺏는다. 보통 마카오는 1일 여행지로 충분하다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이틀 빠듯하게 지내도 다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한한 매력의 여행지다.

 

나는 마카오에 25시간 체류했다. 말하자면 무박 3일, 짧은 일정에 4시간만 자고 계속해 돌아다녔다. 일주는 아니었지만 남과 북을 가로질러 마카오의 끝과 끝을 다녀왔다. 서울시 마포구만한 면적의 마카오는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버스로 1시간이 안 걸린다. 마카오는 이렇게 작은 도시이면서도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어 굳이 렌터카를 빌릴 필요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A26번 버스는 마카오 주요 명소 곳곳을 누벼서, 자유여행자들의 ‘관광버스’로 애용되기도 한다.

 

■ 마카오의 남쪽 끝 ‘작은 해안가 마을’

콜로안 빌리지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처음에 버스에서 내리면, 마카오의 가장 유명한 음식인 ‘에그 타르트’ 맛집 외에 볼 만한 게 있을까 싶다. 그런데 화려하지 않아도 이목을 끄는 소소한 풍경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수녀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면서 지나가고, 시골가게에서는 옛날 어릴 적 불었던 고무풍선 장난감이 걸려 있다. 이렇듯 현지인들과 수녀들의 소박한 생활상을 볼 수 있어, 리조트 밀집지인 ‘코타이 스트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에그 타르트’ 맛집인 로드 스토우즈 베이커리&카페(Lord Stow's Bakery & Cafe)는 마카오 내에 4개의 분점이 있다. 그 중 본점과 카페가 이 콜로안 빌리지에 있다. 이곳은 바다로 가는 길 옆 20평 남짓한 작은 가게로, 에그 타르트처럼 상아빛 페인트칠을 했다. 1989년에 지어져 26년째 이곳에 있다는 표시로 알록달록한 삼각 가렌드를 촘촘히 매달았다.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건 가격 때문이다. 베네시안 마카오 분점과 고작 20분 거리인 이곳은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베네시안 마카오에 있는 분점은 1개에 10파타카(한화 약 1500원), 본점은 9파타카(한화 약 1350원)이고, 6개를 넣은 상자 1개는 50파타카(한화 약 7500원)다. 1박스 당 본점에서 사는 것이 10파타카(한화 약 1500원) 이득이다. 본점은 무척 바쁘지만, 가게 점원들이 친절하면서도 노련하게 일하기 때문에 한 박스를 구매하는 데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구매한 뒤, 바로 앞 벤치에서 꺼내먹으며 여유를 즐긴다. 나는 몇 상자 사서 한국으로 가져왔는데, 먹는 이들마다 아주 만족해했다.

 

로즈 스토우즈 카페 옆 과일가게와 문방구가 있는 작은 시장을 지나면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성당(Igreja de S.Francisco Xavier)이 나온다. 아이들과 산책 나오기 좋은 공원의 느낌이다. 작은 광장을 넘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이곳은 아시아 선교에 일생을 바친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들어가면 한국어로 안내문구가 쓰여 있어,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찾는지 알 수 있다.

 

성당 앞 아팀 카페(Nga Tim Cafe)는 영화<도둑들>에서 김혜수가 목걸이를 맡기던 곳으로 나와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은 신선한 해산물을 사용해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대부분의 음식이 MOP70파타카(한화 약 1만원. 부가세별도)이고 공깃밥은 8파타카이니, 양껏 먹어도 저렴하다. 나는 치킨 카레를 시켜보았는데, 살덩이가 두둑하고 간이 잘 맞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 마카오의 중앙 ‘도심의 풍경’

 

마카오의 중앙은 번화가다. 아파트 밀집 지역과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밀집지역이 붙어 있다. 아침 여덟시면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키 작은 아이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분주하게 걷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빌딩 아래 주차장처럼 생긴 호수빌딩(湖畔大廈) 정거장이다. 이곳은 청량리역과 같은 버스 터미널이다. 주차장으로 버스들이 들어오면, 많은 이들이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는 대략 20대 정도의 버스가 들락날락하며 손님들을 싣는다.

 

이들 중 몇몇은 아마 리조트로 출근할지도 모른다. 버스들이 마카오의 리조트 밀집지역인 ‘코타이 스트립’을 거쳐 가기 때문이다. 코타이 스트립은 낮보다 밤이 더 잘 어울리는 거리다. 코타이 스트립은 근 10년 내에 많은 발전이 이루어진 곳이며, 지금도 계속해 리조트가 지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목소리가 있으나 카지노를 차치하고서라도, 마카오의 리조트 산업은 여전히 활황세를 보인다. 27일에는 스튜디오 시티 마카오 리조트가 개장했는데, 키즈클럽과 리조트 내 여러 시설로 인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파리지앵 마카오가 내년 2분기에 개장을 앞두고 상량식을 마친 상태다.

 

■ 마카오의 북쪽 끝 ‘세계문화유산 지역’

2015년 마카오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이했다. 마카오는 올해 초부터 여러 행사들로 들썩였고, 세계적으로도 마카오를 재조명하는 한해였다. 마카오의 세계문화유산의 공통적인 특징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다. 그래서 장대하고 유구한 역사의 웅장함보다는 테마파크와 같은 즐거움과 산뜻함, 따뜻함이 더 많이 와 닿는다.

 

특히 세나두 광장이 그러하다. 세나두 광장은 19세기와 20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양옆으로 서 있다. 건물들은 분홍 노랑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칠했고, 하얀 색으로 포인트를 넣었다. 바닥은 1993년 포르투갈 양식으로 포장한 것인데, 물결무늬를 흑백 조약돌로 표현했다. 세나두 광장에 가장 인기 있는 가게종목은 ‘화장품 로드샵’이다. 이곳에서 특별히 코리아뷰티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화장품의 품목이 많았고,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걸 가장 전면에 내세워 손님을 끌고 있었다.

 

세나두 광장의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성 도밍고스 성당(St.Dominic Church)이 있다. 성 도밍고스 성당은 1587년에 세워진 마카오 최초의 성당으로, 매년 5월 13일마다 벌어지는 ‘파티마 성모 행진’의 시작점이다. 성 도밍고스 성당의 오른쪽으로 가면 쇼핑거리이고, 왼쪽으로 가면 육포거리다. 육포거리에는 많은 점원들이 육포를 들고 시식을 권한다. 하나둘 시식하다보면 어느새 성 바울 성당의 유적(Fuins of St.Pauls)이 나온다.

 

성 바울 성당은 옛날의 위상을 잃은 것 같았다. 여행자 중 누구도 성당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쉼터로, 개들의 산책길로 자리매김한 이곳. 사실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단한 유적지다.

 

성 바울 성당은 1594년에 지어져 1762년에 문을 닫은 바울 대학 중 일부였고, 극동에 지어진 첫 유럽풍 대학이었다. 성 바울 성당은 1580년에 지어졌고 1595년과 1601년에 두 차례 훼손이 있었다. 또한 1835년에 화재로 인해 정면만 남고 모두 불탔다. 정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5개의 층은 포르투갈 양식과 마카오 양식이 혼합해 있어, 동서양을 모두 담은 건축 양식이다. 이 성당 유적의 앞에는 동상이 있는데, 포르투갈 남자에게 꽃을 건네는 마카오 여성의 모습이다.

 

성 바울 성당의 유적 맨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마카오의 리조트의 불빛이 번쩍였다. 뒤에서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이 “언제 이렇게 컸느냐”고 말하는 듯 했다. 한 자리에서 500년간 마카오를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으리라. 500년 전의 마카오와 지금의 마카오는 분명 많이 다르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하지 않고, 카지노라고 해서 어둡지 않은 무한한 매력의 마카오. 이번 여행은 커다란 테마파크를 멋쟁이노인과 하루 종일 누빈 기분이었다. 물놀이한 듯 고단해져서 비행기에서는 왈칵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인천, 하룻밤 꿈과 같은 여행이었다.

 

[TtL news 임주연 기자] hi_ijy@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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