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발트 빛 머금은 투명한 바다 섬, 필리핀 '보홀(Bohol)'
2017-08-05 13:26:59 | 편성희 기자

새파란 하늘에 윤기를 더하는 강렬한 태양, 하늘색을 그대로 받아내는 투명한 바다와 하얀 스트라이프 같은 백사장. 수면 아래는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물고기, 바다 생물이 사는 곳.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 보홀(Bohol)에서 보낸 3박4일은 더욱 아련했다.


보홀= 편성희 기자 psh4608@ttlnews.com

 

필리핀의 숨은 보석 ‘보홀’
 

직장인이든 사업가이든 우리나라에서 휴가를 내기란 매우 각박하다. 눈치 보고 내지만, 실제로는 1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밖에 얻어내질 못한다. 가까운 동남아권이 가장 많이 찾는 휴가지일 수밖에 없다.


보홀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높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보홀을 ‘필리핀의 숨은 보석’이라고 부른다. 알려지지 않기도 했지만, 접근성도 어려워서 ‘숨은’이란 의미가 붙었다.   


보홀 가는 길은 그간 멀고 험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지 세부에 묻힌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세부에 간 사람들은 현지에서 보홀의 소문을 듣고 마치 보물선이라도 찾은 양 찾아가곤 했다. 세부 피어1 선착장에서는 직선거리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보홀이다. 그러나 실제 배를 타면 빙 돌아가서 더 걸린다. 태풍이 불기라도 하면 모든 교통편이 끊겨, 귀국해야 하는 사람들 마음을 애타게 했다. 

 

필리핀항공, 인천-보홀 전격 직항 운항
 

그런 보홀이 활짝 문을 열었다. 필리핀의 국적항공사,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항공 격인 필리핀항공(PR)이 6월 23일부터 인천 국제공항에서 보홀에 직항 취항했다. 인천에서 새벽 2시 45분에 출발해 4시간 30분간 먹고 자면 보홀 탁빌라란 공항에 도착한다. 귀국편은 보홀에서 오후 5시경에 이륙해 밤 11시 즈음 인천에 도착한다. 84시간 가까이 보홀 땅에 머무는, 4일을 가득 채우는 여정을 보낼 수 있다.
 


탁빌라란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온 짐이 보이는데, 짐 싣는 쪽 인부들이 가만히 서있다. 벨트 길이가 짧은 데다 한 대밖에 없어서 입국자가 짐을 내리지 않으면 짐을 내보낼 수 없는 열약한 시설이다. 그럼에도 설렌 마음에 한결 여유롭다. 마닐라, 세부 공항처럼 누군가가 면세품에 트집을 잡으며 돈 달라는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팡라오, 보홀 여행의 시작과 끝

 

첫발을 내딛은 보홀은 아침 해가 뜬지 얼마 안 된 새벽 6시 반 즈음이다. 탁빌라란에서 팡라오 섬으로 넘어가는 다리 아래로 새벽시장이 문을 열었다. 싱싱한 해산물을 놓고 흥정하는 사람들 소리로 활기차다.
 



탁빌라란은 팡라오 섬과 다리로 연결돼 있다. 팡라오 섬에는 보홀을 대표하는 리조트가 밀집했다. 아모리타, 헤난, 사우스팜 등 필리핀 전통양식에 세련미를 더한 리조트가 알로나 해변(Alona Beach, 이하 알로나 비치)을 마주하고 있다.


팡라오 섬은 버진 아일랜드와 발리카삭 아일랜드 등으로 가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버진 아일랜드는 3050세대의 상상력을 저하한 몹쓸(?) 이력을 지닌 섬이다.
 

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이온음료 포XXXXX.”

 

이 CF에서 본 파라다이스, 알고 보니 버진 아일랜드였다. 
 

 

아시아 최대의 돌고래 서식지

 

보홀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산호, 바다거북이, 잭피쉬, 불가사리 등 각종 해양 보배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스쿠버다이버의 버킷 여행지이기도 하다.
 

돌고래 떼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보는 것은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지만 필리핀 보홀의 바다에선 그렇지 않다. 수많은 돌고래 무리가 떼를 지어 수면위로 솟구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필리핀의 전통 목선 ‘방카’나 보트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간다. 방카로는 1시간가량, 보트로는 20분 정도 이동하면 파밀라칸 섬이 보인다. 이미 보트 여러 척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주변은 돌고래가 서식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곧 이편저편에서 “돌고래가 보인다”고 환호한다.


돌고래 와칭투어를 하는 가이드 중에는 어부가 꽤 있다. 원래 이곳 어부들은 돌고래를 잡아 100달러에 팔았다고 했다. 생태계가 위협받자 1998년 필리핀 정부는 돌고래 포획을 금지했다. 돌고래를 사냥하며 살았던 사람이 이제는 돌고래를 지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야기, 여행지 생활과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용기 있는 자만 보배를 본다
 


좀 더 용기를 내면 애니메이션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바다 보배를 만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해보자. 30~40분 정도 수영장에서 스쿠버다이빙 훈련을 받고 나면, 몸을 뒤집어 바다로 뛰어들 용기가 생긴다. 수압 차로 귀가 아프거나 하면, 손으로 코를 부여잡고 흔들고 아래턱을 좌우로 움직이는 요령도 터득했다.

 


▲사진 제공 필리핀항공


전문 가이드의 도움으로 해수면 아래로 조금씩 내려갔다. 연푸른 바닷속을 헤엄쳐가다 해양 절벽이 나타나자, 교관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오케이(OK) 사인을 낸다. 내려가자는 신호다. 절벽 아래 절경이 펼쳐졌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니모로 알려진 흰동가리가 보인다. 신이 빚은 산호초가 깨끗하다. 훼손되지 않은 보홀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칫 발로 밟을까 신경 쓰다가 순간 짠물을 먹었다.

 

 

섬 투어, 보홀 여행의 필수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겐 스노클링을 추천한다. 발리카삭 아일랜드는 스노클링을 하기 좋은 장소로 유명하다. 수면 아래로 얼굴만 담가도 크기가 제각각인 바다거북이를 마주칠 수 있다. 바닷가 풍경도 깨끗하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에 지어진 로컬풍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처럼 보홀 여행에는 섬투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홀에 가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버진 아일랜드와 발리카삭 아일랜드를 손에 꼽는다.


버진 아일랜드의 정확한 명칭은 Pungtud Island로 일본인 사유지이다. 버진 아일랜드에선 하루에 한 시간 가량 초승달 모양의 백사장 길이 나타난다. 간조의 영향으로 나타는 하얀 모래톱이 섬 둘레 길을 연다. 바다와 마주한 하얀 모래땅 끝에서 인생 샷 한 장을 건진다.
 

 

청정우림 유산, 타르시어·반딧불이

 

알로나 비치에서 차로 35분 정도 가면 타르시어보호센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인 타르시어의 터전이다. ‘안경원숭이’로 알려져 있는 타르시어는 보홀의 상징이다. 전체 길이가 13㎝에 불과할 만큼 작고, 눈 크기는 얼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타르시어는 센터 내 마련된 작은 밀림에서 열대나무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찬찬히 구석구석 살펴봐야 발견할 수 있다. 너무 작아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하다. 타르시어는 눈이 커서 그런지 겁이 많아 보인다. 실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면 안 된다. 큰 소리를 내는 것도 금지사항이다. 몸집이 작은 만큼 큰 소리는 타르시아에게는 굉음으로 들린다고 한다. 자살하는 타르시어도 있다고 한다.


반딧불이는 보홀이 생태여행의 최적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바탄(Abatan)강과 로복(Roboc)강에서 반딧불투어를 할 수 있는데 카약이나 10명 안팎이 타는 보트로 전경을 본다. 알로나 해변에서 50분 정도 차로 이동해야 하지만, 경관을 보고 나면 피곤함은 사라진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듯 반딧불이가 맹그로브 나무를 밝히는 빛의 장관에 푹 빠진다.


▲로복강 투어


낮과 밤, 2색 매력의 알로나 비치


알로나 비치는 아름다운 보홀 해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칭송받는다. 1km 남짓한 해변은 한가하고 평온하다. 해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보라카이에 관광객이 많지 않았을 옛 모습이 지금의 알로나 비치라고 보면 어림짐작할 수 있겠다.  


산호가 부서져서 생긴 하얗고 고운 백사장을 걷거나 몸을 뉜 휴양객, 에메랄드 색 얕은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가족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가장 부러운 건 사람이 아닌 개였다. 상당수의 개들이 해변 곳곳에 드러누워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나 몰라라 한다. 해변 곳곳의 레스토랑, 펍(Pub)에선 개들이 손님들이 던져줄 음식을 기다리며 누워있거나 앉아있다. 알로나 비치는 ‘개의 파라다이스’임은 확실해 보인다.
 


밤 분위기는 약간 다르다.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며 맥주, 칵테일을 하거나 백사장에 놓인 선베드에서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행객을 유혹하는 유흥업 종사자도 해변을 활보한다. 그중에는 성 전환자(Ladyboy)도 더러 있다. 해변 뒤편에 있는 거리에는 클럽, 바, 펍에서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214개 의미 담은 초콜릿 힐

보홀은 육지에서도 독특한 볼거리가 있다. 초콜릿 힐이 대표적이다. 보홀 섬 정중앙에 있는 ‘키세스 초콜릿’ 모양의 낮은 산이어서 “초콜릿 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고로’라는 거인이 짝사랑한 여인 알로야의 죽음에 슬피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져 1268개의 초콜릿 모양의 언덕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전망대로 가는 계단 수는 214개이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맑은 날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흐린 날에는 자욱하게 깔린 구름과 어우러져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편성희 기자 psh4608@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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