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탄자니아의 매력에 빠지다
세렝게티 너 누구니?
2019-11-28 10:50:54 , 수정 : 2019-11-28 11:28:02 | 권기정 기자

[티티엘뉴스▶트래블인사이트] 아프리카는 우리 국민에겐 아직 '미지의 대륙', ‘먼 대륙’으로 인식되는 낯설기도 한 곳 중 하나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관광자원은 우리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탄자니아(Tanzania)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와 야생동물로 유명한 세렝게티 초원 등 우리가 들어본 적 있는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있는 국가이다. 

탄자니아(Tanzania)는 영국 신탁통치령이었던 탕가니카(Tanganyika, 1961~1964)와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잔지바르가 1960년대 초 각각 독립한 뒤 1964년 합병하며 탄생한 나라다. 

탄자니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은 스와힐리어(Swahili)와 영어이다. ‘라이온 킹’에 나와 익숙해진 단어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 아무 문제없어, 다 잘 될 거야)’, 심바(shimba, 사자) 등이 바로 스와힐리어이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스와힐리어 ‘하쿠나 마타타’를 흥얼거리며 탄자니아로 떠나보자. 

 

비자
탄자니아는 우리가 방문하려면 비자가 필요한 나라이다. 탄자니아는 지난 10월부터 전자비자 발급제도를 이용해 편리하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황열병예방접종 필수
탄자니아에 입국하려면 황열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하다. (입국전 10일전 접종 필수) 말라리아 예방약은 권고 사항이다. 

 

▲ 길에서 만난 마사이 부족 소년

 

아프리카 사파리의 중심으로 가는 길 아루샤(Arusha) 

 

세렝게티(Serengeti)를 가기 위해서는 보통 케냐(Kenya)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이동하거나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공항 등을 거쳐간다. 동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육로로 나망가(Namanga)를 통해서 탄자니아의 모시(Moshi)로 이동하거나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 인근에 있는 킬리만자로 공항을 통해 아루샤(Arusha) 로 이동해 세렝게티를 방문하는 방법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에티오피아항공(ET)을 이용해 인천 - 아디스아바바공항 – 킬리만자로 공항의 일정으로 여정을 즐겼다.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자동차로 인구 27만 명의 도시인 아루샤(Arusha)를 거쳐 몇 시간을 더 가야 세렝게티에 닿을 수 있다. 아루샤를 지나 응고롱고로(Ngorongoro) 자연보호구역 입구까지는 왕복 2차선 포장 도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비포장도로가 여행객을 맞는다. 아루샤(Arusha)에서는 마사이 족을 많이 볼 수 있다. 소와 양을 기르는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마사이(Masai)족은 키가 크고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재산은 바로 ‘소’ 이다. 마사이족은 긴 장대와 창을 무기로 삼아 사자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자신들의 가축을 지킨다. 마사이족이 사는 집을 일반적으로 보마(Boma)라고 하는데 가시가 많은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이 안에서 가축들을 보호한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 추워진다. 보온을 위해 소똥과 진흙을 혼합해 벽을 바른 천정이 낮은 집에서 산다. 

 

마사이족은 19세기경 남아공의 유명한 샤카 추장이 이끄는 줄루족이 모잠비크를 거쳐 탄자니아 남부로 왔을 때 줄루족을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용맹하기로 유명한 마사이족도 케냐의 캄바족에게 패했는데 마사이족이 창을 쓰는 데 비해 활을 사용하는 캄바족이 공격과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로 인해 지금도 케냐 나이로비와 몸바사를 잇는 1번 국도를 경계로 아래 쪽은 마사이족이 그 위쪽은 캄바족이 자리잡고 있다. 마사이족은 붉은 체크무늬 옷을 좋아하며 화려한 비즈(구슬)장식으로 몸을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시장 곳곳에서 관광객과 마사이족을 대상으로 비즈 장식을 만들어 판다.

 

▲ 마사이부족, 마사이시장에서 파는 솝스톤 공예품, 마사이시장

 

탄자니아,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Serengeti) 국립공원 게임 드라이브

 

들어는 봤나!! 세렝게티(Serengeti)

 

탄자니아를 여행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파리(safari)',  혹은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이다. 국립공원이나 동물보호구역에서 4륜 구동 차량을 타고 야생동물을 보는 것인데 ‘게임 드라이브’는 동물 사냥에서 유래한 말이며, ‘사파리(safari)'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Swahili)로 ‘무엇인가를 배우는 여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가 지금은 ‘동물을 보는 여행’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부 아프리카 사파리(safari)로 명소로는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 응고롱로고 분화구(Ngorongoro), 타랑기레 국립공원, 마냐라 호수 국립공원, 또한 유인원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굿달의 연구소는 곰베 국립공원 안에 있다. 

 

탄자니아 북쪽에 위치한 세렝게티(Serengeti)는 케냐(Kenya)와 탄자니아(Tanzania)에 폭넓게 살고 있는 마사이(Masai)족의 언어로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는 마사이어로 ‘찬 물’ 혹은 ‘찬 우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인 세렝게티(Serengeti)는 탄자니아 북서부에서 케냐 남서부에 걸쳐 있는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이다. 마라(Mara)강을 중심으로 탄자니아 지역은 세렝게티(Serengeti), 케냐(Kenya)지역은 마사이 마라(Masai Mara)로 나뉘어진다. 세렝게티는 198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크루거 국립공원 등과 함께 아프리카 지역의 동물 보호구역 중 큰 규모를 자랑한다. 약 300만 마리의 동물과 독수리와 황새 등 350여 종의 조류가 어울려 살고 있는 야생동물의 천국이기도 하다. 그만큼 동물 개체수도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동물의 왕국’ 등의 자연 다큐멘터리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세렝게티 지역으로 들어서면 여기서부터 ‘사파리(safari)', 혹은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가 시작된다. 세렝게티(Serengeti) 국립공원의 넓이는 약 1만 4763㎢ 으로 그 크기가 감이 오지 않는다. 고속도로 기준 서울에서 춘천까지 약 120km 정도 되는데 한쪽 길이가 120km 인 정사각형을 생각하면 세렝게티의 넓이와 비슷하다. 우리의 강원도나 충청도의 넓이보다 조금 작은 규모인데 사실 그 넓이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세렝게티(Serengeti)는 동쪽으로는 응고롱고로 자연보호지역과 연결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다. 이런 엄청난 크기와 다양한 동물 개체 덕분에 세렝게티에서 즐기는 사파리는 최소 2박 3일 이상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렝게티(Serengeti)국립공원은 매년 누우(Gnu, wildebeest) 떼의 이동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누우 떼의 대이동은 매년 7월 세렝게티에 건기가 시작되면 우기에 푸른 색을 띤 풀들이 황갈색의 마른 풀이 되면서 건기가 절정에 다다른다. 이때 세렝게티에 살던 수많은 누우떼들과 얼룩말 등 약 150여 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이 물과 먹이를 찾아 케냐의 마사이마라 지역으로 대이동을 시작한다. 초식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면서 이들을 먹이로 삼는 육식동물까지 같이 따라가며 이동을 한다. 이러한 대이동은 지상최대의 경이라고 불리면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대이동 중 새끼의 25%가 목숨을 잃는 위험한 이동이기도 하다.

 

▲ 사파리차량, 기린, 와일드비스트(누)

 

 

사파리(Safari)는 이렇게 즐기자

 

야생동물 사파리를 즐기기 전에 몇 가지 용어를 알아두면 좋은데 사자,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팔로 등 5종의 큰 동물을 ‘빅 파이브(Big Five)’라고 부른다. ‘빅 파이브’는 개체 수가 적고 경계심이 높은 동물들이라 사파리 투어 중에 만나기 어렵다. 보통 많이 만나는 동물은 임팔라, 가젤, 얼룩말 등 초식동물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사자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경험이다. 사파리 관광은 4륜 구동 차량을 타고 즐기는데 드라이버들이 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의 동선을 고려해 국립공원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서로 무전으로 각자 보이는 동물의 위치를 알려준다. 특히 빅파이브 중 사자나 코뿔소가 나타나면 주변의 차량들이 그곳으로 이동해 동물을 최대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야생동물을 보기 좋은 시기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가장 좋다. 건기 때 사파리를 하면 ‘평생 마실 먼지의 절반은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먼지를 많이 경험한다. 우기 때나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될 때는 먼지 없이 사파리를 즐길 수 있다. 하늘에 구름이 많이 있거나 비가 와서 사진이 이쁘지 않은 단점 아닌 단점이 있지만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0월 달은 이미 건기로 들어서 강한 햇살에 온 지역이 누렇게 변한 초원이 대부분이다. 비포장도로는 먼지가 풀풀 날린다. 많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동경하는 이유는 바로 문명과 단절된 야생의 삶 바로 그것. 

 

▲ 사자

 

자연 속에서 즐기는 점심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사파리를 즐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계속 비포장 도로에서 차를 타고 다니다보면 체력적인 소모가 크다. 일반적인 관광지처럼 주변에 식당이 있거나 편의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면서 음료수와 간식거리, 때로는 간단한 도시락를 챙겨가지고 나와야 한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국립공원 내에는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피크닉 사이트가 있고 여기서만 차에서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식당이 없는 허허벌판에 이동식 식당이 등장한다. 스탭들이 이동식 테이블을 펼쳐놓은 후 미리 조리한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아프리카 초원 한 가운데서 예전 탐험가들이 누렸을 만한 식사를 하는 호사인 것이다. 호화로운 식사는 아니지만 나무 그늘 아래서 필라프(볶음밥)와 감자, 닭고기, 스파게티, 야채, 과일 등이 준비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시원한 맥주와 탄산음료 등이 준비된다. 
 

 

인류의 최초의 고향이었지도 모르는 올두바이 조지 (Olduvai Gorge)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자연 보호구에서 세렝게티 국립공원 쪽으로 40km정도 가다 보면 동아프리카 대지구대-그레이트 리프트 밸리(The Gtreat Rift valley) (에티오피아에서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까지 걸쳐진 대지구대)를 만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의 입구에는 1959년 케냐 출생의 영국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 박사 부부가 발견한 현생인류 화석(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Australopithecus boisei)기념탑이 있다. 

 

태초의 인류 역사를 담은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은 탄자니아 북부 세렝게티 국립공원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고인류의 화석과 석기가 많이 출토돼 고고학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외에도 도널드 요한슨(1943-)이란 학자가 1986년에 이곳에서 180만 년 전의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하였다. 이곳(올두바이)에서 화석의 발견은 그동안 아프리카에 과연 무슨 인간이 살았겠느냐 하는 서구적 역사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역사적 발견이다. 

 

▲ 올두바이 조지 기념탑

 

세렝게티의 숙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파리 관광지 답게 다양한 숙소들이 국립공원 지역 안에 있다. 세렝게티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숙소이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리조트는 자가발전을 통해 리조트 전체에 전력을 공급하기에 원활하게 전력공급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밤에는 주변에 하이에나 등 각종 야행성을 가지고 있는 야생동물들이 어슬렁거린다. 아침에 방 앞으로 얼룩말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경험담이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곳,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인터넷 와이파이(WIFI)도 식당에서만 겨우 연결되는 그런 곳 아프리카. 

 

▲ 국립공원 내 숙소에는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다.

 

동아프리카의 종합동물전시장 `응고롱고로(Ngorongoro)`

 

지구상에 있는 가장 큰 자연 분화구인 응고롱고로 (Ngorongoro) 자연 보호구는 마사이 부족의 언어로 ‘큰 구멍’을 뜻한다. 혹은 마사이족이 키우는 소의 방울 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고도 한다. 응고롱고로는 분화구의 동서간 길이가 19Km 남북간 길이 16km의 타원형의 모양에 깊이는 약 600m 정도의 분화구이다. 아루샤에서 자동차로 약 3-4시간을 가면(약 180km의 거리) 응고롱고로 입구에 도착하고 이곳엔 응고롱고로 크레이터 건벤션 센터(Ngorogoro Crater Convention Centre)가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안내소에 들어가면 인간의 진화과정과 탄자니아의 동물서식지, 식물의 종류 등이 그림과 함께 설치되어 있으며, 응고롱고로 분화구 모형으로 인근지형을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정상을 향해 20여 분을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면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관광객들은 비포장 도로를 달려와서 얼얼해진 몸을 잠시 쉬어간다. 

 

▲ 응고롱고로 전망대

 

응고롱고로는 기린을 제외한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거의 대부분의 종류의 동물이 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동물백화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동물학자들이 상주하면서 동물의 생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응고롱고로는 사륜구동차량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관광객들은 지정된 길 이외에는 다닐 수 없으므로 이 점을 조심해야 한다. 응고롱고로 안에는 습지대와 호수가 펼쳐져 있다. 서쪽에는 하마들이 서식하고 있는 히포 포인트가 있다. 히포 포인트(Hippo Point)라 불리는 거의 모든 곳에서는 하마를 볼 수 있다. 마카투 호수라 불리는 응고롱고로 중간의 호수에서는 펠리컨과 홍학(플라밍고)를 볼 수 있다. 건,우기 계절에 따라 그 개체 수가 다르지만 많은 수의 플라밍고가 이곳에 있어 분홍빛의 띠가 호수 주변에 펼쳐진 것이 장관이다.  

 

응고롱고로는 원래 마사이의 땅이다. 응고롱고로 주변에는 마사이 부족들이 집단으로 사는 전통 가옥인 보마스(Bomas)가 있고, 여기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마사이족은 전통적으로 목축을 주로 하는 종족인데 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따라 부의 기준으로 삼는다. 
 

▲ 응고롱고로 안에는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그들의 삶과 죽음을 목격할 수 있다. 

 

탄자니아의 신성한 영산 `킬리만자로` 

 

아프리카에는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산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5,895m)이고 하나는 케냐 중앙 고원부에 위치한 케냐 산(5,199m)이다. 일찍이 문호 헤밍웨이가 킬리만자로(Kilimanjaro)가 보이는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글을 썼고, 국민가수라 부르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라는 노래로 유명해졌다. 당시 이 곡은 노래방의 애창곡으로 자리잡으면서 직장인들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가 인연이 되어 조용필씨는 1999년 5월 탄자니아 정부 초청으로 탄자니아를 방문했고, 나중에 탄자니아 관광 홍보대사가 되는 명예를 얻었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에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마사이족도 신성시 해서 산 근처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이 산 중턱에 사는 소수의 챠가 부족(현재는 포터와 가이드를 하는 부족)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를 등반한 한국인은 1981년 전명철이 최초로 킬리만자로 등반에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킬리만자로는 1848년 독일 선교사 레프만(Rebmann)과 크라프(Krapf)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처음에 유럽 사람들은 적도가 있는 아프리카에 만년설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원래 킬리만자로는 케냐 땅이었다. 당시 케냐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와 두 번째인 케냐산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케냐는 영국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탕카니카(지금의 탄자니아)는 그녀의 조카인 독일 황제가 지배를 하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조카는 숙모에게 둘 중 하나만 달라고 졸랐다. 조카를 사랑하는 영국 여왕은 킬리만자로가 탕가니카로 들어가도록 지도에 자를 대고 국경을 주욱 그었다. 킬리만자로는 조카의 생일선물로 탕카니카에 넘어가 버렸다. 또한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도 이 일로 결정지어 졌다. 

 

킬리만자로의 세 개의 봉우리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키보와 마웬지라는 형제가 있었다. 게으른 마웬지는 늘 형인 키보에게 와서 불씨를 빌려달라고 했다. 어느 날 마웬지가 하루에 세 번씩이나 불을 꺼뜨리고 불씨를 빌리러 왔다. 화가 난 키보가 마웬지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이유로 지금처럼 마웬지의 정상이 찌그러졌다는 이야기다.

 

▲ 마랑구 폭포

 

'빛나는 산' 이란 뜻을 가진 '킬리만자로'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는 약 200만년 전부터 여러 차례의 복잡한 화산폭발로 만들어졌다. 용암이 겹치고 또 겹쳐서 평원 위에 거대하고 우뚝 솟은 모양이 되었다. 산기슭에서부터 넓게 펼쳐져 있는 평원에 우뚝 솟아오른 킬리만자로산은 영산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그 장중함이 그 주변을 압도하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중심부에는 3개의 봉우리 - 키보봉, 마웬지봉, 시라봉이 있다. 봉우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침식이 가장 심하게 된 시라봉은 격렬한 화산 폭발로 그 정상이 내려앉고 그후의 침식 작용으로 더욱 깎여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오래된 마웬지봉의 정상은 침식작용이 심해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이 목적이 아닌 많은 관광객들은 마랑구 게이트에서 출발한다. 올라가는 길은 산림지대라서 아프리카의 따가운 햇빛을 피할 수는 있으나 공기가 습해서 땀이 연신 송글송글 나온다. 4-5시간을 오르면 해발 2727m (9,000ft) 의 만다라 산장(Mandara hut, 해발 2720m)이 나온다. 관광객들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산지역인 킬리만자로에는 좋은 커피가 생산이 된다. 보통 킬리만자로 AA라 불리는 질좋은 커피인데 이곳에서 신선한 원두로 갓볶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 산으로 올라가는 길, 킬리만자로산 (C) Pixabay

 

이국적인 풍경과 프레디 머큐리의 흔적이 가득 `잔지바 (Zanzibar)`  

 

동아프리카 연안, 인도양에는 이국적인 섬들이 산재해 있다. 스와힐리 해안(Swahili coast)에는 아프리카에 있으리라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아랍, 이슬람의 풍경과 산호초가 부서져서 생긴 하얀 백사장 그리고 푸른 바다, 산호초의 비경이 관광객의 눈길을 잡으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잔지바(Zanzibar)는 50여 개의 작은 섬과 주변에 마피아 섬, 펨바 섬등으로 이루어진 탄자니아의 한 자치주인데 내륙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실제적으로도 잔지바 사람들은 자신들을 탄자니아 국민이라 불리기보다는 잔지바섬에 사는 아랍인으로 부르기를 원한다. 이들의 조상은 10세기 경부터 이주하기 시작한 오만 사람들이다. 오만사람들이 ‘다우(Dhaw)’ 라는 배를 타고 무역풍을 이용해 이곳에 와서 현지인들과 결혼으로 이 지역의 지배층이 되었다. 자신들은 오만의 후손이기에 아프리카인이 아닌 아랍인이라는 말이 조금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잔지바는 16세기 경에는 포르투갈의 지배와 이후 아라비아 반도에 있던 오만 제국이 포르투갈 세력을 축출(1698년)하면서 오만의 영향권 아래 들게 되었다. 1828~1861년 약 30여년 간 오만 제국의 수도였으며 1861년부터는 오만에서 분리되어 잔지바르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96년에는 영국과 전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963년 12월 영국의 보호령이 종료되며 탕가니카와 연합으로 지금의 탄자니아(탕가니카+잔지바)가 되었다.   

 

▲ 잔지바의 아름다운 해변

 

잔지바는 일명 인도양의 보석으로 알려질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곳이다. 이미 13-4세기 경에는 동아프리카의 오마니 술탄(오만 제국의 술탄)이 지배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금수 조치가 내려진 상아와 노예를 거래하였다. 이외에도 맹그로브 등과 '정향 (클로브,clove)'등의 향신료가 주된 교역품 중의 하나였다. 

 

노예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때는 한달 동안에 3000-4000명이 잔지바 노예시장을 통해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73년 술탄의 노예무역 금지 선언으로 폐지되었지만 동부아프리카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노예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잔지바의 노예무역은 주로 페르시아지역의 암염 광산이나 목화 농장 등에 노동 인력으로 팔려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는 호텔로 변신해있다. 전통 목선 다우, 다자라니 시장

 

잔지바의 스톤타운에는 그룹 퀸(Queen)의 유명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의 생가가 있다. 프레드 머큐리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이유는 영국 식민지 아래서 잔지바에서 공무원을 하던 인도계 부친 때문이었는데 1964년 잔지바가 독립을 하면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무슬림 입장에서는 동성애자인 프레디 머큐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금은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를 호텔에서 인수해 지금은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프레디 머큐리의 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등 프레디 머큐리의 성지같은 곳이다. 

 

EDIT 권기정    john@ttlnews.com
PHOTO     이진원
취재협조     탄자니아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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