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태산서 소원성취를 빌었다
2018-07-27 17:16:19 | 김종윤 기자

[티티엘뉴스] 태산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부모님 정도 나이 지긋한 부부의 옆자리에 앉았다. 등산복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재밌었냐고 물었다.
 

엄지 척. 생각보다 정말 좋았던 여정이었다. 아주머니는 자식 생각이 났나 보다. “우리 딸은 같이 오자니까, 안 온다더라고….” 사실 나도 일하러 간 것이지, 내 돈 주고는 안 갔을 여행지. 유럽이면 따라갔을 텐데요, 덧붙일 수는 없었다.
 

아주머니가 물었다. “어때, 산에서 감동 받았어?” 나는 속히 대답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의 ‘감동’과 내가 받은 그 ‘감동’은 달랐을 것이다(셀카는 감동이었다). 아주머니도 그걸 알아 차마 자식에게 억지 부리지 않고 여행에 나선 것이겠지.
 

그러나 직접 느껴본 태산·태항산·왕망령은 비밀이 있었다. 이참에 효녀 노릇해 같이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태산·태항산·왕망령, 정말 황홀하다.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간결한 크기, 가볍게 사진을 찍으니 초점 잡기도 수월하다.


▲소니 RX1RM2 CYBER SHOT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선택한 기종이다. DSLR과 비교하여도 떨어지지 않는 해상도와 고성능 영상 촬영도 수월하다.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이곳
 

이곳은 특히나 20대 남자들이라면 껌뻑 죽을 여행지일 것 같다. 남자 사람들을 보며 느낀 점 하나는, ‘무협지’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 어떤 포인트에서 그렇게 무협지에 빠져드는지 모르겠으나, 삼국지·무협지소설·무협만화에 한 번쯤은 빠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무협지 배경, 그 자체다. 나조차도 어깨 너머 보았던 무협소설에서 장군이 된 듯 으쓱했으니. 정말 놀라웠던 것! 이곳은 도교문화를 숭상한다. 그래서 도교의 무술인들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혹여 가이드에게 한번 물어보라.

 

“혹시, 도술 할 줄 아시나요?”


이곳에선 이런 말이 이상하지 않다.
 

왕망령 산화대는 태항산과 중주 평원 냉온 기체가 교착되는 곳이다. 모주석의 시에서 묘사한 것처럼 ‘높은 하늘에는 파도치는 찬바람이 급하고 대지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벼랑 아래의 따뜻한 기류가 상승하여 절벽과 충돌하고 찬 공기의 눌림을 받아 이 틈새에서 파도친다. 벼랑에서 흩날리는 복숭아꽃은 골짜기에서 춤을 추며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천녀가 꽃을 뿌리는 듯하다’고 표현해, 산화대다.

 


◆안갯속에서 소원을 말해봐

 

왕망령 안개 바다에는 그리운 냄새가 난다. 안개는 보인다. 그러나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기루 같다. 아름답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바람 불면 곧 떠나고 마는 순한 심성의 안개는 어쩐지 그리운 감정을 부른다. 팍팍한 삶에 잊었던 꿈같다.

 


▲소니 RX1RM2 CYBER SHOT


안개가 이웃인 이 고장은 산에서 소원을 비는 습성이 있다. 태산에서는 부자의 신 동상을 만났다. 또 태산할머니신 동상도 만났는데, 진시황제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다 한다. 소원을 비는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향을 피우거나, 절을 하거나, 동전을 던지거나, 시주하거나, 자물쇠를 채우거나 등등.
 

새벽 4시 왕망령 바윗길을 마을버스로 시속 90km로 달릴 때, 절로 기도가 나왔다. 가이드가 운전사에게 건네는 중국말이 점점 빨라지고, 우리는 흔들거리는 버스에 앉아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울상 지었다.


이윽고 왕망령의 정상. 안개가 가릴 수 없을 만큼 빛나는 해가 떠올랐다.
 


◆꿀처럼 달콤한 산의 풍경들
 

소설깨나 읽었다는 사람 중, 김연수 소설가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읽을 당시 인생 최고의 단편소설을 만났다며 가슴 벅차올랐던 소설이었다. 이번 태산 여행을 준비하며 이 소설을 떠올렸다. 어쩌면 평생 기억에 남을 산행이 되지 않을까.

 


▲태항산 팔천협. 이곳이 가장 걷는 길이가 길다.

 

다시 한 달을 올라…. 산이라 하면 한 달 정도 올라야 하지 않나. 게다가 이름도 ‘태산’. 그러나 태산은 너무 쉬웠다. 어떤 아저씨가 “돌계단 12개만 올라가면 돼!”라고 하시더니, 그 말에 90%는 사실이었다. 태산여행은 등산도 아니다. 도보여행보다도 덜 힘들었다. 오히려 간만에 산행이 달콤했다.
 

꿀팁, 꿀맛, 꿀벅지 등 꿀을 붙여 표현하자면, 이곳은 꿀풍경이다. 정말 여행 내내 태항산은 한 폭의 산수화라 말했다. 그러니 누군가 한 폭에 담지 못하는 산수화라 했다.
 


◆산을 옮기고 동굴을 뚫고…
 

문자 좀 쓰겠다. 우공이산(愚公移山). 무슨 뜻인지 아는가. 우공이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집 앞을 가로막은 산을 옮기고자, 돌 하나하나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신이 그 정성에 감동해 그 산을 옮겨주었다.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이룬다는 뜻이다.
 


이곳은 이 이야기가 실화인 곳이다. 이른바 ‘대륙의 스케일’을 보여준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산자락 절벽에 누군가 동굴을 뚫었다. 산을 가로질러 병원을 가야 하는 산마을의 염원을 담아 10년간 고생한 끝에 뚫린 길이다. 한국에서는 이곳을 비나리길이라 부른다. 비나리여행사가 인솔 중에 최초 발견했기 때문이란다.
 


◆포푸리 나무 늘어선 노랑 밀밭
 

태항산도 식후경! 이곳은 빵이 맛있다. 질 좋은 밀이 자라나서, 그 밀로 빵을 손수 만든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본 풍경이라 하면, 안개 낀 밀밭이다. 고속도로 옆은 모두 밀로 가득 찼다. 이곳 빵은 보들보들하고 텁텁한 맛이 없다. 어떤 방부제도 넣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다양한 빵이 있는 뷔페와, 뷔페에서 키우는 자라


나는 뷔페에 가면 꼭 부드러운 빵 한 덩이를 가져온다. 손을 잘게 찢어 조그맣게 말아 입에 넣고 씹으면, 그야말로 무색 무미(無色 無味). 오랫동안 씹어보면 고소한 맛이 살아난다.
 

이곳의 여행지들은 사실 이 빵처럼 순수한 맛이 있다. MSG에 절어서 살던 삶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힐링 타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스마트폰이나 VR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진짜 자연이 태산·태항산·왕망령에 있다.

 

촬영장비= 소니코리아(소니 RX1RM2 CYBER SHOT)

 

김종윤 기자 yoons35@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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