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직원도 살리려 신청한 고용유지지원금…폐업의 덫으로 돌아왔다
2021-01-06 22:01:32 , 수정 : 2021-01-06 22:47:54 | 정연비 기자

[티티엘뉴스] #.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해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게되면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다. 어렵사리 직원들을 채용하며 10여년 간 일궈왔던 사업체를 마냥 닫을수는 없었기에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서라도 버텨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해 9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부정수급 업체라며 그동안 받았던 지원금과 과태료까지 2억여 원이 넘는 금액을 반환하라는 통지를 받게 됐다.

 

지원기간 동안 직원들이 출근해 업무를 진행했기에 지원 조건을 위반했다는 명목이었다. 여행을 예약한 고객들이 코로나19로 갈 수 없게 되자 수백 건의 예약들을 취소처리해야 했고 이 또한 그동안 함께 회사를 일궈왔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고객의 불편을 처리하기 위했던 것이었음을 항변했다. 지급받았던 돈도 명목대로 사용했음을 증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시했지만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결국 회사를 지키기 위해 신청했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10여 년간 어렵게 일궈낸 사업체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된 셈이다.

 

지난해부터 이미 매출 제로에 임대료도 임시직으로 겨우 메우고 있던 그에게 억대의 과태료는 감당할 여력이 없다. 직원없이 고객 예약 취소처리와 고정비용 등을 감당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와중에 조사까지 받으며 개인적인 손해까지 떠안은 A씨는 “기업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해당 제도의 시행의도가 아니냐”며 “제도 파악에 미숙했다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세금까지 무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행정처분이다”고 토로했다.

 

 

위와 같이 코로나19로 고용유지가 어려워진 사업주들을 위한 고용유지지원금이 수개월 후 여행사들에게 돌연 올가미로 돌아온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해외여행을 주업으로 하는 여행사들은 지난해부터 매출 제로인 상태를 겪으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일정 기간 연명해왔다. 영업 활동이 멈춘지 오래이고 최악의 업황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유지지원금 덕분에 폐업은 적었다.

 

문제는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조건이 여행 현장과의 엄청난 간극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이용했던 일부 여행사들은 부정수급업체로 낙인찍히며 수세에 몰렸다는 점이다. 대부분 제도의 기본 수칙 인지 부족으로 행정사안들을 위반한 경우다. 설상가상으로 적발 건수 중에는 사업주를 고발해 범칙금의 일부를 포상금으로 받아 지원받던 수당보다 몇배의 이익을 챙기는 등 포상제도를 악용한 사례들도 있던 것으로 알려져 여행사업자들의 정확한 인지가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업무 안 했어도 출근하는 순간 근무로 간주…실제 현장과 괴리감 多

 

부정수급업체로 간주된 여행사 중에는 직원이 잠시 회사에 들렀던 경우도 포함돼있다. 풀타임 근무가 아니더라도 출근한 순간부터 회사 컴퓨터를 이용한 잠깐의 행위마저도 업무로 간주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행사 대표는 “냉정하게 말해서 지원 기준을 어긴 것은 사실이니 책임을 물더라도 무작정 패널티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풀타임으로 근무하지 않은 경우 등 위반의 경중을 세세하게 따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단지 10분 정도 고객 불편 사항을 처리한 경우까지도 하루 꼬박 정규근무한 것으로 간주돼 범칙금으로 산정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견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제도 내에 이미 변경 절차가 존재하고 있기에 적용에 유연한 부분이 있음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실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소 업무 수행인력만 남겨 지원을 신청할 수 있고 지원 중간에도 사정이 있다면 3일 전까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전날까지도 변경 신청이 가능함을 설명하며 만일 여행사가 고객의 급한 취소 건을 처리해야 하고 회사 나와서 해야 한다면 변경신청을 하고 출근할 수 있다는 예시도 들었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여행 예약 취소 전화가 올 정도로 명확한 휴업 계획을 세우는게 무의미할만큼 변수가 많은 업무다”라며 “눈앞에 밀려있는 컴플레인을 처리하기도 바쁜 업체들이 몇일 전에 휴업 및 휴직 변경 요청을 할 수 있는 여유는 많지 않다”고 행정의 허점을 꼬집었다.

 

또다른 여행사 대표는 “고객들은 두번 이야기 할 것 없이 자신의 여행예약을 담당했던 직원이 직접 해결해주는 것을 당연히 선호하고 회사 역시 담당했던 직원이 일처리를 하는 것이 빠르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점을 마다할 순 없다"며 "시스템상 회사 컴퓨터를 통해 처리해야 하는 점도 휴업이나 휴직 중인 직원들이 불가피하게 회사에 나오는 상황을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여행업 특성 고려않는 처사에 충분한 계도나 고지없었다 VS 온오프라인에서 모든 정보 확인 가능해 여행업만 특별 고려할 수 없어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업체들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당시부터 제대로된 안내조차 받을 수 없었다”며 “반드시 인지해야 할 주의사항을 신청 전후 따로 공지받지 못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실제 창구에 방문했던 이들은 “접수창구에서는 뒤에 신청자가 밀려있고 필수 안내 사항은 이미 설명했으니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각 회사마다 상황이 달라 대처해야 할 방법을 듣기 위해 몇번이나 재방문하기도 했지만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들로 결국 궁금한 부분을 해소할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고용노동부 측은 “해당 제도에 숙지가 미숙했던 부분은 타업종의 여러 회사들도 마찬가지며 여행업에 국한해서만 무작정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못박았다.

 

답변자는 “업종마다 각기 특수한 상황들이 있지만 똑같이 형태로 지원되어 왔다”며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내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고 온라인 채널도 충분히 활용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제도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설명이나 유의사항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행정 처분의 불합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이전 연간 1000~2000여 개에 불과하던 신청 업체가 지난해는 8만 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하루에 많게는 1000~2000여 곳의 사업체들이 신청했다”며 “인력에 여유가 있었다면 8만여 개에 달하는 신청 업체마다 담당을 1명씩 배치해 컨설팅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전했다.

 

여행사들은 “여행사 역시 부족한 인력으로 밀려드는 고객들의 예약 취소 및 환불 건을 처리하면서 별도로 회사 존립에 필요한 부분을 따로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세월에 긴 설명을 일일이 읽고 앉아 있나”, “그것만으로 고용노동부는 의무를 다했다고 면책하면 안된다. 종이 한 장 주고 고지의무를 다했다고 하는 것인가” 등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심판대 앞 홀로 놓인 영세여행사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폐업을 막으려던 영세한 여행사들은 부지불식간에 위법 업체로 몰리며 되려 폐업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경영상 법적인 어려움이 발생해도 개인 힘으로 해결할 여력없지만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전무하다.

 

제도에 대해 파악이 미숙했을 뿐 부정수급의 의도도 없었고 직원의 협조로 자발적인 출근인 점, 본래 상황보다 부풀려져 허위 고발된 경우 등 여러 해명에도 이들의 입장은 받아들여질 기미가 없다. 행정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절차에서 이뤄지는 개별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도 수사담당자들이 기본 기준을 위반한 사실만을 잣대로 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의 특성을 고려해 유연한 선처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을 못한 경우를 감안해 지원금을 주는 것인데 별다른 신고없이 업무를 진행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비록 매출 활동이 아닌 업무였다 할지라도 출근해서 업무를 본 자체가 회사에 이익을 준 행위로 본다는 설명이다.

 

막대한 환수금을 통보받은 여행사들은 결국 전직원 퇴사라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대량의 해고를 막아 근로자를 보호하고 사업주들의 고용지원을 돕는다는 취지는 무색해졌다.

 

이렇게 폐업위기까지 몰린 여행사 대표들은 “업체와 사장 개인의 신뢰도까지 위협받으며 진작에 폐업한 것보다 못한 상황이다. 고용유지라는 타이틀만 인식해 세부적인 내용 파악에는 안일하게 생각했던 점은 큰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억대의 범칙금까지 무는 것은 가혹하다”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일해왔던 직원들을 떠나보내게 됐는데 결국에는 여행사 직원들도 일하던 터전을 잃은 셈 아니냐”며 반문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의 명과 암…부작용은 이미 예고됐다

 

진작 지난해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이 여행업계에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지적은 있어왔다.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전제하에 받는 돈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질적으로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행업 특성상 완벽한 휴업이나 휴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업자들의 설명이다. 코로나19가 심각하게 확산되고 장기화되면서 고객들의 취소와 환불요청은 빗발쳤고 최소한의 전화 응대라도 필요한 상황이 지속됐다. 최소 2명부터 30여 명에 이르는 개인 및 단체고객들의 취소 처리 건은 편의상 직접 맡았던 실무자가 할 수밖에 없는데 강제가 아닌 직원 자발적으로 나와서 처리했다고 해도 출근하는 순간 근무로 인정돼 정책을 위반한 업체가 되는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은 휴업 중인 근로자가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원칙적으로는 신규채용도 불가하다. 실제로 제주 드림타워 건으로 신규채용을 진행했던 롯데관광개발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제도가 가진 다양한 사각지대의 개선 여부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여행업종은 특별지원업종으로 지정해 보다 혜택을 주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시행 법령의 사각지대나 보완할 점은 단체나 개인이 직접 다양한 채널로 지적 할 수 있고 신문고, 국민청원 같은 채널들을 활용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결국 회사 일선 경영만으로도 벅찬 영세 사업주에게는 세밀한 준비 부족으로 회사가 누릴 수 있는 제도적인 혜택을 놓치거나 필요한 기준을 간과해 입는 손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현실만 존재할 뿐이다. 
 

정연비 기자 jyb@tt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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