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옥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일곱 번째 주인공 양혜규 작가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
국내 전시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소가치 부각
2020-12-01 15:44:40 , 수정 : 2020-12-01 16:25:29 | 이린 칼럼니스트

[티티엘뉴스] 나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의 주요 도시를 방문할 때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내겐 커다란 행복을 주는 장소다.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자유가 부족할 땐 책과 영화 등을 통해 미술 작품 속 스토리를 여행하고 상상하며 꿈을 꾼다. 
 

어떤 공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은 물론 작가의 인생을 만날 때면 나는 그저 작품 앞에 존재하고 있지만, 또 한 명의 타인의 삶과 또 다른 우주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술관 건축부터 공간의 연출 분위기와 걸려있는 작품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열정으로 만들어진 이 모든 것들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멈출 수 없는 호기심으로 금주엔 국립현대미술관의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현대차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매년 전시를 연다. 각기 다른 태도와 감각을 가진 한국의 중진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역동성을 확인시켜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의 일곱 번째 작가로 양혜규를 선정했다 상징적 메시지가 담긴 조각과 대형 설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양혜규가 이번 전시에서는 서사와 추상의 관계성, 여성성, 이주와 경계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40여 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작품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그의 예술세계를 먼저 살펴본다.


양혜규(1971~) 작가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과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13 등 대형 국제 미술 행사에서 자주 러브콜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와 뉴욕 현대미술관, 쾰른 루트비히미술관 등 권위 있는 기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하고 소장품을 전시하며 국제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표창)을 수상했으며,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순수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인물과 사건, 현상을 포함하는 방대한 문화적 참조물(reference)을 수집하고 그것을 설치, 조각, 영상, 사진,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력적인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이 과정에서 창조물은 낯설지만 새로운 인과관계로 재배열되면서 역사성을 넘어 현재라는 시점에 도달한다. 
 

또 양혜규 작가는 대량생산된 기성품을 활용하는 레디메이드 기법을 구사하는 동시에, 노동 집약적 작업 과정을 취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단순한 이해와 교훈적 사고의 문턱을 넘어서는 지적 깊이와 강렬한 시각적 조형성으로 높이 평가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양혜규 작가의 25년에 걸친 꾸준한 작업과 활발한 전시 경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시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심층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동시대 국제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양혜규의 이번 대규모 개인전을 계기로 그의 작품 세계가 한 층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소리 나는 가물家物(2020)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매력적인 조형언어로 귀결된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양헤규 O2 & H2O]에서 작가는 ‘현실의 추상성’이라는 화두로 또 다른 도약을 시도한다. 
 

생명체의 주요 에너지인 공기와 물은 자연 상태에서 화학기호처럼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O2와 H2O는 과학적 사실계, 그 사실을 오롯이 인지할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을 포함한 지각계, 기후, 재난 등 점차 극단으로 치닫는 현상계를 총체적으로 사유하고자 질문을 던진다. 
O2와 H2O는 우리의 현실만큼 혼종적인 전시이다. 
 

양혜규 작가는 다양한 사회 문화권에서 습득된 지식, 관습, 현상을 보다 초월적인 시공간에서 ‘환상적인’ 시각언어로 구사한다. 

 

 

▲ 중간 유형(2017~2020)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선 주목되는 오브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방울이다. 방울은 무속을 비롯한 많은 종교에서도 여러 차원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춤과 같은 몸짓을 동반한 의례에서 금속성 방울 소리는 정신 상태를 최고조로 고양시키는 수단이다.
 

다리미, 헤어드라이어, 냄비, 빨래건조대 등 일상의 물건들을 사람보다 크게 확대해 맞붙이거나 결합한 ‘소리 나는 가물(家物)’은 표면을 뒤덮은 수많은 방울들로 인해 또 하나의 혼종(混種)으로 탄생했다. 손잡이와 바퀴가 달려 있어 움직일 때마다 방울이 떨리면서 소리를 낸다. 그래서 로봇 같기도 하고 정체 모를 생명체 같기도 하다.
 

방울과 인조 짚을 사용한 <소리나는 가물>과 <중간유형>, 그리고 목우공방의 숟가락은 공예적 수행성의 의미를 오늘의 사회에 빗댄다. 형태적으로 생명체와 기계, 사물과 인간 사이 어느 지점을 가리키는 양혜규 조각-존재는 설화적 기괴함과 친근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높이 10m에 달하는 움직이는 블라인드 조각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이 서울박스에 설치됐다. 과거 맥주 양조장이었던 베를린의 킨들 현대미술센터 보일러 하우스에 2017년 설치된 바 있던 이 작품은 15여 년에 걸쳐 전개된 블라인드의 설치의 최근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 침묵의 저장고 _ 클릭된 속심(20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오행 비행(2020)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또한 디지털 콜라주 현수막 <오행비행>과 <디엠지 비행>의 작품속에서 물질과 상징, 에너지와 기술, 기후와 재해, 사회적 양극화 등 우리가 마주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들 전체가 소리 없이 붕괴되어 있다. 이는 금번 전시가 열망하는 현 문명에 대한 초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인 통찰이기도 하다. 
 

한편 전시의 도록과 함께 양혜규 선집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이 국립현대미술관과 실문화의 공동출판으로 출간되었다. 지난 25여년에 걸친 작가 양혜규의 성장과정과 작품 궤적을 접할 수 있는 선집 [공기와 물]은 독자들에게 이번 전시를 한 층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21년 1월 17일까지 진행된다. 국립현대미술관 4개관은 29일 재개관하며, 미술관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하고 관람할 수 있다.

 

▲ 디엠지 비행(2020)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린 칼럼니스트 art-together@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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