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LOVE, LIES, 2015년, 대한민국, 박흥식 감독,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 주연

‘배우 한효주’의 탄생을 보는 기쁨이 쏠쏠한 작품이다. 한효주는 누가 보더라도 ‘예쁜’ 배우이다. <광해> <오직 그대만> <반창꼬> 등은 한효주라는 예쁜 배우를 배치하여 예쁜 화면을 장식했다, 라고 말하면 무례일까? 그러나 아쉽게도 거기서 ‘배우 한효주’를 찾기란,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혹 예쁜 외모에 그녀의 연기가 묻혀버린 것일까?
그러나 <해어화>에서 한효주는 그냥 예쁘기만 한 배우는 아니었다. 둘도 없는 친구에게 약혼자를 빼앗긴 아픔과 분노를 고약하고 독하게 풀어내는, 슬프고 조금은 낯선 시대 속의 정소율이란 여인이 한효주를 통해 다시 화면 가득 불려나왔다, 마치 실제 있었던 사람처럼. 단지 가엾기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다고만 할 수도 없는,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그랬을 거야’ 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그런 삶을 산 여인이 한효주라는 배우에 실려 훅 다가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던 때의 기억을 한효주는 이렇게 말했다.
“잠도 잘 자지 못했어요. 분장을 하고 대사를 하기 직전까지도 체한 것 같았어요. 촬영 기간 중 제일 마지막 날, 마지막 촬영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죠.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엄청났어요. 첫 테이크에서 연기가 안 돼 화장실에 가서 ‘몇 시간만 소율이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촬영이 끝나자 마음이 아주 편해지더라고요. 긴 여정의 끝이 났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만큼 많이 빠져 있었나 봐요. 배우로서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정소율이 실존하는 기분이 들어 정말 신기했어요. 소름이 돋기도 했죠.”
<더팩트>, 2016년 4월 18일자 권혁기 기자의 인터뷰 기사에서
연기 경험이 부족할 때 배우들은 자신의 경험을 끌어다 연기한다. 가령 눈물 연기를 해야 할 때면 가장 슬펐던 때를 떠올려 눈물을 짜낸다. 한효주도 그러했다. 그런데 <해어화>에서 한효주는 ‘정소율이라는 캐릭터는 어땠을까?’라고 고민하며 연기했다. 여러 작품들을 거치는 동안 그게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편하다는 건 자연스럽다는 이야기여서 보는 이들이 더 몰입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효주라는 ‘예쁜 배우’가 연기에 삶을 담는 ‘진짜 배우’로 거듭나고 있지 싶다. 그녀의 말 속에는 이것저것 많은 시간과 고민을 겪어온 흔적이 묻어난다. 이런 말은 지어내어서 할 수 없는 말이다.

배우란 남의 인생을 연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의 인생을 연기함으로써 자기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 이 역설이야말로 배우의 기쁨이 기다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느덧 한효주라는 배우도,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자신의 세계가 생겨나는 것일까. 자신의 몸에 그런 삶과 마음을 담아낼 때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나아갈 길도 찾을 수 있겠지.
한효주에게 배우란 직업은 이제 더 이상 ‘직’이 아닌 ‘업’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꼭 봐야겠다는 기대를 갖는다.
박명철 칼럼니스트
▶박명철 칼럼니스트는…
책,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소재로 하여 밥을 짓듯 글을 짓는 문화콘텐츠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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