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호텔과 판타지소설 사이 ‘빌 벤슬리’의 JW메리어트 푸꾸옥
2023-04-21 08:49:46 | 임요희 기자

[티티엘뉴스] 그의 작업은 작은 스토리에서 출발하지만 그가 내놓은 결과물은 웅대하고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빌 벤슬리(Bill Bensley)의 손이 닿는 순간 호텔은 한 권의 책으로 변신한다. 스토리텔링, 맥시멀, 디테일, 상생은 그가 이제껏 추구해온 원칙이다.

▲JW메리어트 푸꾸옥은 빌 벤슬리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JW메리어트 푸꾸옥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캠(Kham) 비치에 위치한다. 이곳은 몰디브 수준으로 수심이 얕아 물놀이에 제격이며, 고깃배들이 푸른 등을 달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낭만적인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JW메리어트 푸꾸옥의 가장 뛰어난 매력은 빌 벤슬리가 가공한 특별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마르크 유니버스 입학을 환영해"


소설적이다. 너무도 소설적이다. JW메리어트 푸꾸옥에서는 체크인 대신 입학이 필요하다. 

 

▲대학과 호텔의 혼종, JW메리어트

 

원래 이곳은 1880년대 설립된 라마르크 대학이 있던 자리였다. 푸꾸옥에 거주하던 프랑스인이 그들의 자녀들과 지역민을 위해 세운 대학으로 1940년대 프랑스인들이 섬을 떠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라마르크의 영광이 다시 살아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천재 건축가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강의실은 객실로, 학장의 사택은 레스토랑으로, 버섯균 보관실은 스파로, 화학실험실은 BAR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로써 대학과 호텔의 혼종, JW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JW Marriott Phu Quoc Emerald Bay)가 탄생하게 되었다. 정말이냐고? 당연히 허구다. 

 

▲호텔 곳곳에 자리 잡은 풀

 

이 지역에 작은 대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다 할 유물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푸꾸옥에 프랑스인이 세운 대학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듣고 빌 벤슬리가 장편소설을 쓴 것이다. 


빌 벤슬리는 자신의 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해 옷걸이 하나, 스푼 하나, 벽돌 하나까지 섬세하게 재구성했다. 심지어 라마르크 대학 초대 학장의 증증손자가 호텔의 총지배인이 되었다는 가슴 뭉클한 스토리까지 지어냈다.

 

 

호텔 전체를 박물관으로 꾸미다


그가 만든 세상 속에서 대학은 1940년 문을 닫았지만 창고에는 그 시절의 유물이 고스란히 보관된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벤슬리는 이 유물들을 이용해 호텔 곳곳을 장식했다. 

 


▲ 대학을 호텔로 부활시킨 빌 벤슬리

 

메리어트의 벨 데스크는 라마르크 대학의 관문으로 45개의 크고 작은 종이 전시되어 있다. 별 데스크 뒤쪽에 자리 잡은 낡은 가구는 학생들의 도서관 카드 서랍장이다. 서랍장 위쪽으로 이 학교 출신이면서 프랑스 가톨릭 사제이자 철학가로 이름을 떨친 라므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리셉션 주변에 놓아둔 수많은 기물 가운데 라마르크 대학의 초대 학장인 타이 매튜 콜린스 학장의 흉상이 있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라마르크 대학을 글로벌 수준으로 만든 인물이다. 구글 검색하지 마시라. 허구의 대학인 만큼 인물들도 다 허구다.  


 

징병 간 학생들이 놓고 간 트렁크


라마르크 대학 스포츠팀은 활약이 대단했는데 리지백 종의 개를 그들의 마스코트로 삼았다. 

▲이곳의 유물은 벤슬리의 수집품이다.

 


▲우승컵으로 만든 분수

 

 

학생들은 리지백 룰!(Ridgebacks Rule!)을 외치며 자기 팀을 응원했다. 라마르크 대학은 특히 럭비팀이 강했다. 1929년 아시안 챔피언십에서 우승까지 거머쥘 정도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흘러 그때 받은 트로피로 분수를 만들었으니 여전히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회랑에 걸린 구식 테니스 라켓과 낡은 축구화, 때 묻은 유니폼, 빛바랜 단체사진은 스포츠팀이 융성했던 그 시절의 영화를 떠올리게 해준다. 
리셉션 홀에는 학생들이 놓고 간 트렁크가 전시되어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찾아갈 예정이었지만 징병으로 인해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물건이다. 손때 묻은 물건이며 가슴 뭉클한 사연까지 물론 다 허구다. 호텔 곳곳을 채운 장식품은 벤슬리가 평생에 걸쳐 모은 수집품이라고 한다. 

 

 

호이안 유적을 떠올리게 하는 ‘루 드 라마르크’  


스파, 기프트샵, 레스토랑, 피트니스가 자리 잡은 라마르크 거리는 호이안 구시가지의 건축물로 채워져 있다. 

 

▲호이안 유적을 호텔에 들였다

 


▲루 드 라마르크를 밝히는 호이안 랜턴

 

이곳 진입로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호이안의 랜드마크 ‘내원교’다. 디테일의 대가답게 그는 2층 내부까지 실물과 똑같이 구성했다. 어둠이 내리면 낡은 건물들 사이로 호이안 랜턴이 밝게 빛난다. 그 나라의 역사성을 빠뜨리지 않고 반영하는 벤슬리다운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샹트렐 스파’는 라마르크 거리에서도 가장 빛나는 곳이다. 벤슬리의 세계 속에서 이곳은 버섯균 보관실로 등장한다. 어둡고 습한 데다 곰팡이 냄새로 가득한 이곳을 빌 벤슬리는 밝고 향기로운 곳으로 변화시켰다. 그런데 방 하나만큼은 그대로 두었으니 버섯학 교수인 샹피농 루즈의 연구실이다. 그는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 위치한 그의 저택을 본따 연구실을 꾸민 뒤 사랑하는 버섯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상트렐 스파

 

대체 이런 이야기까지 꾸며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빌 벤슬리는 건축과 판타지 소설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판타스틱해지려면 이야기는 정교하고 꼼꼼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학장의 사택, 에펠이 다녀간 방에서 식사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핑크 펄’은 빌 벤슬리의 세계 속에서 초대 학장이 살던 집으로 등장한다. 학장의 두 번째 부인인 펄 여사는 푸꾸옥 전역에서 ‘그랜드 호스티스’로 명성이 자자했다. 

 

▲필크 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그녀는 핑크색을 좋아해서 집 인테리어를 핑크로 통일했는데 이 지역 상류층들은 이 고급스러운 집에 초대받는 것을 열망했다. 펄 여사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학교의 배려로 그 집에 계속 머물렀다고 한다. 


JW메리어트는 지난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이곳 핑크 펄 레스토랑에서 미슐랭 투 스타 셰프 ‘타카기 카즈오’와 함께 하는 특별한 미식 이벤트를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조식과 중식을 제공하는 템퍼스 푸짓(Tempus Fugit)은 ‘세월이 빠르다’는 뜻의 라틴어로, 건축학과 강의실이었던 것으로 설정된다. 

템퍼스 푸짓에서 즐기는 베트남 전통식

 


화학과의 바

 

구스타프 에펠 등 당대의 유명 건축가들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테이블에 그려진 에펠탑 도면은 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밖에 건축 설계에 사용된 자와 각도기 등 다양한 도구들을 볼 수 있다.


탁 트인 캠 비치 해변에 자리 잡은 화학과의 바(The Department of Chemistry Bar)는 튜브, 비커 같은 오래된 실험 도구들이 가득하다. ‘유리 속의 과학’ 칵테일은 술이 에틸알코올이라는 데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음료인 듯 싶다. 한 모금만 마시는 것만으로 대번에 마법의 세계로 날아갈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케미스트리 바에서는 저녁 5시부터 7시까지는 ‘해피아워’로 할인된 가격에 주류를 즐길 수 있다.


 

객실로 변신한 강의실 


벤슬리 디테일의 결정판은 호텔 객실이라고 할 수 있다. 


객실동

 

에셔를 연상시키는 벽화

 

각 객실 동은 해양학과, 생물학과, 동물학과, 미술학과, 인류학과, 천문학과, 곤충학과, 파충류학과 콘셉트로 꾸며졌다. 방문객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복도 가득 걸려 있는 관련 자료와 마주치게 된다. 정원에는 콘셉트에 걸맞은 조형물과 토피어리가 한 가득이다. 


빌 밴슬리가 조경사 출신이다 보니 식물을 가꾸고 꾸미는 데 들이는 노력이 상당하다. 금방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동물 모양의 식물들 앞에서 누군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있으랴.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동물 벽화 역시 아카데믹한 그의 취향을 보여준다. 

 

▲해변

 

JW메리어트 푸꾸옥에서는 1층 객실이 가장 인기가 많다. 베란다 정원을 통해 풀, 바다로 바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조개껍데기 모양의 풀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 



메리어트는 2박3일 묵는 것으로는 아쉬울 만큼 판타스틱한 경험이었다. 주의할 것은 곳곳이 인스타그램 스팟이어서 휴식은 뒷전이고,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면 JW메리어트 푸꾸옥은 다시 없는 경험과 즐거운 추억을 안겨줄 장소임에 틀림없다.

 

 

취재협조=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베트남 푸꾸옥= 임요희 기자 4balan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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