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의 유럽 유랑] 5화▶ 스위스 리기산, 신은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2016-03-13 22:49:20 | 김지훈 칼럼니스트


▲리기산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타고 리기산 중턱에 오른 우리는 산악열차로 갈아탔다.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타게 되는 교통수단 중 하나다. 어찌나 매력적인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언젠가 지워질 기억을 대신하기 위해서 몸도 마음도 바빴다.
 

철도에 오르는 사람들은 큰 기대감에 차있는 표정이었다. 매일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도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을 만날까?”라는 기대를 드러내는 거 같았다. 흥분으로 가득한 플랫폼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악열차에 오른 여행객은 타고 올라가는 동안 흥분의 도가니였지만 난 분노로 가득 찼었다. 사진으로 봐왔던 리기산에서 바라보는 절경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연막탄을 터트린 듯 뿌옇게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대자연은 없었다.


▲리기산에서 바라보는 스위스 도시


다행히 조금은 스위스 리기산을 즐길 수 있었다. 5분정도 짧은 시간동안 수줍게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 신부 같았다. 오히려 감사했고 다시 날씨는 흐려졌다. 나중에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려했던 순간이 온 것이다. 선택된 자들만이 히말라야의 맑은 날씨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난 스위스 리기산도 제대로 못 본 불행한 인간이었다. 마음마저 먹구름이 끼였다.

  
리기산 정상에 도착하니 우르르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하늘은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토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이 싸준 김밥을 먹고 목이 메어 눈을 씹어 먹으며 걸었다. 아쉬운 마음을 위로하며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천둥이 우리 근처를 때렸다.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어렸을 때 책받침을 옷에 문질러 머리에 올려두면 마구 머리카락이 붙었던 것처럼 섰다. 추억의 사진을 다시 보니 십자가 형상이 뒤에 보였다. 우리의 무덤이 될 뻔 했다. 


▲리기산 산악열차


천둥을 피해 터널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리기산은 우리를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등을 떠밀며 하산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눈발도 거세어지면서 산악기차에 발을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거처로 자리를 옮겼다. 유독 피곤한 하루였다. 아름다운 광경은 곤을 잊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여행에서 지나친 기대는 실망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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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훈 칼럼니스트는…
 “죽음, 그 순간을 경험한 후 삶이 달라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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