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의 유럽 유랑]8화▶ 스위스 뮈렌, 영화 007 촬영지에서 생긴 일
2016-04-06 23:22:27 | 김지훈 칼럼니스트

그땐 그랬다. 군 시절 내가 배정받은 부대는 11사단 기갑수색대대였다. 기갑부대는 행군을 덜 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다. 우리 부대는 전통을 운운하며 자주했다. 걷는 것에 이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강원도의 아름다운 경관은 걷고 또 걷게 만드는 추진체가 되었다. 혼이 빠져 걷는다는 말이 있는데 행군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자연에 현혹되어 걸었다. 도시에서 온 스물한 살 청년은 군 생활이 꽤 즐거웠다.

  
▲스위스 뮈렌 케이블카 정류장


스위스 뮈렌에서의 시간 역시 현혹의 시간이었다. 자연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웅장했다. 생에 이렇게 큰 바위산을 보지를 못했다. 처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설악산보다 아름다운 산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설악산은 아름답다. 세계 어느 곳을 다녀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명산이다. 그런데 단념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만큼 스위스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장비를 걸치고 줄을 타게끔 만든 곳이다. 상상해보라. 귀엽지 않은가?

  
하산을 위해서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007 촬영지였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들이 보인다. 영화 속 제임스 본드가 이곳을 누볐다. 여행 전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방문하니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었다. 사소한 것 하나가 모여서 여행을 설레게 만든다. 그 시기 영화보다 더 좋은 것은 또 없었기에 이곳은 성지와 같았다.

 


▲스위스 뮈렌 케이블카와 풍경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또 남달랐다.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아래서 바라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이래서 시선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조금은 삭막하고 아기자기 했다. 계절이 주는 영향도 컸다. 풍요로운 시기는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강적을 만났다. 1인 시위를 하듯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부르는 또래의 청년이었다. 모든 사람이 웅성거렸다. 욕도 들린다. 국적 불문하고 욕은 이상하게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소음이었다. 만약 양해를 구하고 노래를 잘 불렀다면 그것은 작은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중국의 혁명가 같았다.

  
▲케이블카 정류장 대기실에 있는 영화 007 표식


중국 청년의 영향이었을까? 눈이 감기고 피곤했다. 아름다운 자연의 최면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나른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베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기차는 나와 다르게 힘차게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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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칼럼니스트는…
 “죽음, 그 순간을 경험한 후 삶이 달라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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